2013년 12월 26일 오전 11시 30분. 잊지 못할 시간이다. 수백명의 취재진이 열을 올리고, 취재 카메라는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으며, 공중의 방송용 헬기는 이 장면을 실시간 생중계했다.
일본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시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그토록 민감해 하는 일을 전 세계가 보란 듯이 드러내놓고 행동으로 옮겼다.
참배 방식도 납득이 안되지만 참배 후 기자들을 상대로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게 존숭(尊崇)의 뜻을 표했다. 중국, 한국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 것도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자 폭거다.
태평양 전쟁의 A급 범죄자 영령을 「존숭」이라며 숭배하고, 한국과 중국의 국민들에게는 「기분」 운운하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문제 제기를 일시적인 기분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베의 이같은 도발은 2014년 한 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라는 신호탄이 분명하다.
일본의 문제는 무엇일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어 대학살, 생체실험, 강제징용, 수탈과 착취 등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이 문제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견뎌 낸 주변국 국민들이 과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으나 아무 반성도 없이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자숙하기는 커녕 한국과 중국에 대해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공격 하고 있다. 2013년 일본은 독도와 관련된 영토문제,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공세,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비난 등으로 때론 강공으로, 때론 치고 빠지기로 공격을 해오고 있다.
우선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만든 「다케시마」 자료를 여론조사 응답자들에게 읽힌 뒤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 결과를 아전인수 격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려는 심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일본의 전략적 홍보임에 더욱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일 정상 회담과 관련, 우리 정부에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독도문제 등으로 비우호적 환경을 조성해 놓고, 국제적으로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을 수용하지 않아 성사되지 않은 것처럼 전략적으로 홍보하는 이중적인 행태도 보였다.
오죽하면 일본은 미국에게조차 『한국이 친중국화 해 일본과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완고하여 국내 정치에서도 불통이고 국제적으로도 불통이다』라며 한국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남수단 한빛 부대에 유엔을 통해 실탄 1만발을 지원해 놓고도,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직접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며 자랑하듯 홍보까지 했다. 한국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더하여 한국과 중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에 표지석을 설치하려 하자,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은 『일본은 그동안에도 안중근에 대해 범죄자라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밝혀왔다』라는 망언까지 했다.
2014년 새해부터 공세는 또 시작됐다. 일본 유력지 요미우리는 5일 사설에서 한일 갈등의 원인이 박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제 3국 요인을 상대로 일본 비판 발언을 멈추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동은 일국 지도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치밀하게 계산된 홍보 공세, 각료들의 전략적인 역사왜곡 발언, 군사력 시위 등에 대해 우리는 무슨 대응을 하고 있는지 면밀히 돌아봐야 한다. 중국과 한국이 성장하고, 미국이 일본에게 동북아 안보에 있어 역할을 분담하려 함에 따라 일본은 이번 기회를 틈타 군사대국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각 나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움직임이 빨라짐에 따라 동북아에서 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과거와 같은 고식적인 접근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큰 판을 봐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작년 5월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씨가 일일 역사 강사로 등장해 낭독해준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대목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거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고개가 숙여진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미가 자식에게 죽어야만 효도하는 것이라고 쓴 편지이다. 암울한 시대에 역설로서밖에 저항할 수 없었던 어머니, 대한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기억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기억하겠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