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남가좌2동 주민센터 강당에서 일본현대사 특강이 열렸다.
문화원에서 구민들에게 제공하는 인문학 강좌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특강은 한중일 3개국 시리즈 마지막 편인 일본 우경화, 반미와 친미에 관한 강의가 진행됐다.일본 전문가로 통하는 한신대 하종문 교수가 강사로 초빙되어 일본 근현대부터 이어져온 친미 우경화 정책을 소개했다.
하 교수는 『지난달 3일 미국 정부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 공동성명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일본의 방위력 강화구상을 환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며 『이 시점에서 그간의 일본의 우경화 과정과 미국에 대한 전략의 변화를 살펴 현재 상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강의에서 하 교수는 대표적인 전쟁 전 국제주의자였던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1900)」를 먼저 소개했다. 무사도는 일본을 구미 세계에 알린 최대의 베스트 셀러다. 유학 중 이 책을 저술한 니토베는 저서 속에서 무사를 충성과 명예를 가다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멋진 존재로 미화했고 외교관,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국제 연맹 사무국 차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니토베는 「조선은 일본의 친구」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제국주의 입장을 취하면서도「힘만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나라가 독립할 권리는 없다」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니토베의 얼굴이 지난 1984년부터 최근 2007년까지 5000엔 지폐를 장식했을만치 일본은 친미제국주의 성향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전후 전쟁에 염증이 난 일본 국민들은 전쟁은 다신 있어선 안 된다는 시각이 우세했고 60~80년대 당시 자민당 정권은 잘 살게 하는 정책을 추진해 당시 서독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우뚝섰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로 강대국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1982년 역사 교과서 파동을 시작으로 역사인식 국제화 및 복잡화의 계기가 일어났다.
반미냐 친미냐로 역사인식이 쟁점화 됐으며 진보역사학자들은 국가 전쟁을 공동 모의한 것에 대해 천황이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 정치인들은 정체성을 고민했다.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등의 제국주의 행동을 축소 정당화하며 신사참배 등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더 가깝게 지내면서 일본의 우경화가속화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미국과 우호관계를 등에 업고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하 교수는 『일본 극우파 중에 원폭을 떨어뜨린 미국에 아직도 반미 감정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많음에도 친미정책을 추구하게 된 것은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