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인터뷰
일본군대 강제위안부 희생자 유족회 중앙회 김영만 회장
sdmnews 옥현영 기자
2013-04-04 17:34
홍제천서 2000만명 서명운동 사진전
테러 위협 속 목숨 걸고 20년간 투쟁
“위안부 할머니 살아계실때 명예회복 돼야”
일본군대강제위안부 희생자 유족회 중앙회 김영만 회장이 지난 21일부터 4일간 홍제천 폭포마당에서 개최한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위안부 유족회 측은 지난 12월 26일 국회 신축 의원회관 로비에서 첫 사진전 및 태평양전쟁 사망자의 유해송환, 희생자에 대한 피해 보상, 미불임금공탁금환불, 일본군대위안부의 사죄와 보상 등 실질적인 한일과거사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한 후 전국 순회를 계획중이다. 김영만 회장을 만나 그간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본다.<편집자주>

특히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해 온 피해자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김영만 회장 역시 어머니의 인권회복을 위해 94년 3월 일본 변협 대표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동경모텔을 찾았다 독극물 테러를 당했다.

『도쿄의 한 모텔이었는데 당시 일본 변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하지만 변호사들이라고 보기엔 뭔가 달랐고 일본 정부 관계자인 듯 보였다. 위안부할머니들의 명부를 달라고 요구했고, 우리는 거절했다. 일본 천왕을 전범자로 인정하라고 요구하자 그쪽에서 거절하고 자리를 떴다. 호텔 내부에 있던 검은 옷의 남자들이 일순간에 빠져나갔다. 물 한잔 마시고 가려는데 물 맛이 이상했다. 같이 현장에 있던 김복선 할머니에게 화장실로 데려다 달라고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김회장은 그때의 휴유증으로 지금도 치아가 없다. 당시 독극물로 인해 잇몸이 녹고 피를 토하는 등 한달간 죽음과 싸워야 했다. 현장에서 빠져나오기까지도 쉽지 않았고, 당시 정부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공식 항의하거나 자국민을 보호해줄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국내 언론에서는 한 줄도 보도가 안됐다. 김 회장은 한달만에 깨어난 후 내외신 기자를 불러 일주일에 2번씩 기자회견을 가졌고, 외국 언론을 통해 사실이 보도됐다.

직후 일본에 가서 당시 일본의 하타총리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가려 했으나 입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이 사실을 접한 한국의 대학생 총연합회가 3개월간 일본 대사관을 포위하고 시위하겠다고 밝혔고, 그래도 입국이 안되면 3년간 장기시위를 할 것 선포했고, 세계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이틀만에 정부에서 연락이 와 일본에 갈 수 있었다』

20년 전 이야기지만 김 회장의 회한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하타총리와의 면담은 불발이 되고, 총리부에 들어가는 과정 중에 김회장의 어머니와 노청자 할머니의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김영만 회장의 소망은 지금이라도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가족이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종군위안부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 종군은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목숨을 담보로 일본군에 성노예로 끌려간 희생자다』

김 회장은 현재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책을 집필 중이다. 그 중에는 14살 소녀가 50명이 넘는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엄마를 부르며 죽어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시 일본군은 부대를 옮기면서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아있는 위안부들을 처참히 죽였다. 심지어는 총알이 아깝다며 동굴에 가두거나 땅에 묻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그는 대국민자진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연대해 2000만명 서명운동을 서울부터 제주까지 강행한다. 현재 600명 정도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바자회로 쓰인 수익은 유가족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