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국제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한 허선경 의원은 원래 방송인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화장품 관련 무역회사에 다니다,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상암동과 가까운 북가좌동으로 무작정 이사를 왔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생각보다 좁았다. 방송고시를 준비하던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고향인 부산에 사시는 아버지가 허의원을 불러 내렸다. 부산 진구 갑 국회의원 선거캠프의 뉴미디어팀 PD로 참여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정치'가 허선경 의원의 삶에 들어왔다.
"당시 정책 콘텐츠와 브이로그, 유세차용 영상 등을 만들었는데 흥미로웠어요." 처음 해본 일이었지만, 재미있었다. 함께 일하던 선배가 "국회 비서관을 하면 잘하겠다"며 추천해준 것이 두 번째 우연이었다. "당시는 국회 비서관이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었거든요."
허 의원은 40개 의원실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중 현재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고 있는 박홍근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비서관 생활이 시작됐다. 3년 뒤 김영호 의원과 인연이 닿으면서 정책지원과 보좌, 지역구 업무까지 병행하게 됐다. 짧은 시간 안에 지역정치를 온몸으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2024년, 기초의회 출마 제안이 있었고 도전을 결심했다.
돌아보면 허선경 의원의 정치 입문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해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었다. 그 결심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소망이 더 있었다. 보수세가 강한 부산 진구에서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으로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아버지의 오랜 꿈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서울까지 올라와 딸의 유세를 도왔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딸이 대신 이뤄냈다.
첫 상임위 구성 후, 허선경 의원은 10대 전반기의회의 1년간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국회에서도 예산업무를 지원한 경험이 있지만, 막상 예결위원장으로서의 입장을 발표하려니 긴장이 됐어요. 정견발표문을 쓰고 녹음도 해보고 연습도 하며 의회를 준비했습니다." 초선 의원이었지만 그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첫 5분발언으로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힐튼호텔의 친일재산에 대한 대응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도시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세 가지 질문에 답해달라”는 초선 의원답지 않은 무게감있는 요구를 전했다.
남북가좌동의 가장 큰 민원인 주차 문제 해결도 그의 과제 중 하나다. 북가좌2동 청년주택 주차장 공유 등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한 번 더 쓰임 있는 의원이고 싶다"
4년 뒤 어떤 모습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답을 내놓았다. "이대로면 아쉽다. 한 번 더 기대되는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짊어지는 의원. 그것이 허선경 의원이 그리는 앞으로의 4년이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