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떠난 유학길.
그 길 끝에서 그는 영화를 만났다.
이후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러시아에서 영성(靈性)을 탐구하고, 블랙가스펠을 연출하고, 베트남 영화제에 출품하며 세계를 누볐던 사람. 지금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강단에 서서 날것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김회성 교수를 만났다.
<편집자주>
"26시간 편집,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묻자, 교수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유학을 간 것 같습니다."
진학한 아트스쿨에는 광고학과와 영화학과가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영화학과를 택했다. 첫 수업은 편집 수업이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꼬박 26시간을 작업했다. "그냥 재미있었어요." 짧은 한마디에 그 시절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필름 세대의 끝자락에 학교를 다닌 덕에 시나리오 작업은 필수였다. 우연한 기회에 〈블랙가스펠〉 연출을 맡으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감독이 직접 이야기를 써야 하는 환경 속에서 단련된 글쓰기는 훗날 베트남 영화제 출품작 〈마이 미스터 와이프〉의 각본과 연출로 이어졌고, 아세안 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현장과 강의실 사이, "미래의 동료와 함께한다"
미국에서의 공부, 현장에서의 제작, 그리고 이제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삶. 이 여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고 하자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살아서 움직이는 일이요."
그에게 강의실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다. 100% 현장과 같을 수는 없지만, 현장과 강의실의 중간 어딘가에 서 있으려 매 수업 노력한다. "미래에 나와 함께 일할 동료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강의에 임합니다." 그 마음이 수업을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특별하게 만든다.
제자가 부른 인연, 예상치 못한 만학도의 세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와의 인연은 우연처럼 시작됐다. 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중, 제자 한 명이 이 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학교 영화제를 맡게 된 제자가 도움을 요청하며 몇 차례 찾아왔고, 그렇게 학교와 첫 인연이 닿았다.
그런데 와서 가장 놀란 건 학생들의 연령대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만학도들이 있었어요." 연극에서는 분장으로 나이를 조절할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오히려 그 다양성이 촬영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다양한 나이대의 역할을 있는 그대로 맡을 수 있다는 점, 그게 이 학교만의 색다른 재미라고 했다.
"날것의 학생들이 더 빠르게 자란다"
13년째 제자들을 만나고 있는 그는, 엘리트를 가르치는 것보다 처음 연기를 경험하는 초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기본이 안 된 날것의 제자들을 지도하다 보면 진심을 쏟아붓게 됩니다.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이거든요."
매 학기 2학기에 열리는 영화제는 그 성장의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다. 유명 영화인들의 축전과 커튼콜, 그리고 학생들의 빛나는 얼굴. 그 순간들이 그를 강단에 붙들어 놓는다.
"선생과 제자를 떠나, 저는 학생들의 인생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거죠."
영화는 99%, 어쩌면 100%의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고 그는 믿는다. 하지만 그 재능은 이미 완성된 형태로 오는 게 아니다. 날것의 상태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고.
운명처럼 다시 만난 영화
강의실 밖의 그는 완전한 F(감성형)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강의실 안에서는 "쌉T"로 무장하고 제자들을 마주하지만.
사실 그의 이력은 영화 이전에 신학이 있다. 영화 공부를 마친 뒤 러시아로 건너가 선교사를 꿈꾸며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적 격변으로 선교가 어려워지던 무렵, 운명처럼 제안이 들어왔다. 〈블랙가스펠〉 원작자가 연출자를 찾고 있었는데, "영화를 알고, 영성을 알고, 영어가 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7년간의 종교 공부를 뒤로하고, 그는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연히 문화센터 영화 무료 강좌를 1년간 맡게 됐다. 강좌가 인기를 끌자 학교 강의로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영화를 전도하고 있는 셈이죠."
앞으로도, 영화는 계속된다
크랭크인 날짜까지 잡아놓은 시나리오가 코로나로 무산됐던 아픔이 있다. 요즘은 감독이 직접 창작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드물어졌다. 원작을 사들여 찍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딜레마를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래도 영화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아서 움직이는 일. 그것이 그가 영화를 부르는 이름이자, 지금도 강단에 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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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