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복 소매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128kg의 몸을 받쳐주는 두 발은 매트 위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신연중학교 3학년 김도현(16)군. 유도를 시작한 지 불과 2년 4개월 만에 서울특별시 대표 자격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다. 일반 중학교 소속 생활체육 도장 출신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도현 군의 운동 이력은 유도가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취미삼아 태권도, 복싱 등 격투기 종목을 두루 거쳤다. 에너지가 늘 넘치던 도현이가 홍제동에 위치한 '홍제 리얼유도관'의 문을 두드린 것이 2022년,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사춘기 에너지를 좋은 곳에 쏟았으면 하는 마음에 운동을 시켰어요. 학업보다는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도현 군의 어머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에는 선수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기대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즐겁게 땀 흘리기를 바랐을 뿐이다.
관장이 발견한 가능성
홍제 리얼유도관 박형주 관장(34)은 도현 군을 처음 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6학년 때 왔을 때 몸무게가 128kg이었어요. 딱 봐도 운동신경이 있었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그게 제대로 발산이 안 되고 있었죠. 유도는 체급 경기라 덩치가 클수록 유리한 면이 있어요. 힘 차이가 확실하거든요."
박 관장은 도현 군을 또래 초등부 친구들과 놀이처럼 운동시키는 대신, 처음부터 선수부 형들, 관장·사범과 함께 실전처럼 배우게 했다.
"힘도 쓰고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하니까 재미를 느끼더라고요. 우직하고 꾸준한 게 장점이에요. 거기다 덩치에 비해 스피드가 좋아요."
박 관장 자신도 어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고등부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부상으로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대학 때부터 사범 생활을 시작해 27살 무렵 나고 자란 홍제동에 도장을 열었다. 젊은 지도자로서 학생들과의 소통이 자연스럽고, 그 점이 도현 군의 재능을 일찍 발굴하는 데 힘이 됐다.
첫 대회, 첫 입상, 그리고 부상
유도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2024년 3월, 도현 군은 처음으로 대회 매트에 올랐다. 제23회 서울특별시 3·1절 기념 유도대회였다. 결과보다는 경험이 목적이었던 '체험 출전'이었지만, 그 후 같은 해 가을, ‘서대문구 유도대회’ 중등부 은상을 시작으로 수상이 이어졌다. ‘2024년 4월 제4회 서대문구회장배 중등부 2위 까지, 대회를 거듭하며 성적이 올라갔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12월, 낙법 연습 중 실수로 어깨 쇄골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2025년 1월 수술을 받고, 약 4~5개월간 훈련을 쉬어야 했다.
"실질적으로 운동한 기간은 3년이 채 안 돼요. 중간에 쉰 기간을 빼면요."
박 관장의 말처럼, 도현 군의 성장 곡선은 그 공백을 빼고도 가파르다.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도현 군은 달라져 있었다.
2025년 9월 제4회 서대문구청장배 유도대회 남자 중등부 +90kg 1위, 그리고 2026년 초, 제23회 서울특별시 3·1절 기념 유도대회 남자 중등부 +90kg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는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시 선발전을 겸한 대회로, 유도부를 운영하는 중학교의 엘리트 선수들도 다수 참가했다. 생활체육 도장 출신 선수가 엘리트 학교 선수들과 겨뤄 1위를 차지한 것은 홍제 리얼유도관 중고등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90kg은 중등부 최고 체급이에요. 이 체급에서 서울시 대표로 뽑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죠."
박 관장은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오는 5월, 도현 군은 ’전국소년체육대회 엘리트부‘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한다. 홍제 리얼유도관 소속으로 서울시 대표가 된 것도 처음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러 유도 명문 고등학교에서 관심을 보내고 있다. ’소년체전 결과에 따라 진학 방향도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허리후리기가 자신의 특기라고 소개하는 도현군은 "국가대표를 목표로 해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꿈을 현실로 이끈 리얼 유도관"
‘홍제 리얼유도관은 현재 수련생 약 80명 규모로, 초등부 12명, 중고등부 20~30명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 관장은 어릴 때부터 전업 선수의 길을 강요하기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유도의 장점은 단순히 운동량이 많다는 게 아니에요. 처음 보는 동작을 배우고, 근신경계를 쓰고, 칼로리 소모도 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요. 그 재미를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게 먼저예요."
서울 엘리트 유도 저변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홍제동 매트 위의 한 소년이 기록을 갈아치우며 꿈을 향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