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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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별이 된 시인 박화목 "아름다운 시로 남고 싶어"
sdmnews
2025-10-14 20:37
과수원길, 보리밭, 도라지꽃 등 노랫말만 남고 작사가 잊혀져
탄생 100주년, 주민중심 박화목 기념사업회 준비모임 꾸려져
박화목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우표
서대문문화촌에 세워진 박화목 시비
지난 3월 서대문구 홍제동 문화촌 주민을 중심으로 박화목 시인의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가 꾸려져 눈길을 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귀에 익은 이 가곡은 작곡가 윤용화 선생의 곡에 시인 박화목 선생이 가사를 붙인 가곡 「보리밭」의 한 구절이다. 「보리밭」을 한번쯤 불러보지 않은 이는 드물지만 박화목 시인이 홍제3동에 50년간 살아온 토박이었고, 지난 2004년 81세의 나이로 작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주민은 흔치 않다.

박화목 선생(호 은종)은 1924년 황해도 출생으로 중국 심양시 동북신학교와, 한신대학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6.25 종군기자로도 활동했었다. 또 CBS편성국장, 한국문인협회 분과회장을 비롯, 숭의여전, 교원대 등에 출강했던 순수한 열정을 가진 문학의 선구자였다. 뿐만아니라 한국아동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할 만큼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이 커 그가 작사한 곡 중 「과수원길」은 아직도 그 아름다운 노랫말로 그 생명을 잃지 않고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5년 당시 박화목 시인의아들과 친구였던 아들을 둔 한 주민의 노력으로 현재 문화촌 인근에는 박화목 시인의 「과수원길」이 새겨진 추모비가 건립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 박화목 시인에 대한 기억은 다시 멈춰섰다.

서대문사람들 371호에는 당시 박화목 시인의 부인 김숙희 씨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생전의 박화목 선생은 온화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고 박화목 시인의 부인 김숙희 여사는 박 시인을 이렇게 회고한다. 자유당 시절 이기붕 씨가 문화인들을 위해 조성한 문화촌에 쌀 한가마와 3만원의 돈을 받고 특별분양할 당시 홍제3동에 둥지를 튼 박화목 선생의 가족은 한 자리에서만 50년을 살아왔다.(현재는 70년) 
박화목 시인을 기념하고자 모인 준비위원회는 20여명의 주민으로 구성됐다. 그 중 시인의 친족인 박근목 씨가 준비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박화목시인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는 문화촌 일대에 「명상의 길」건립과 관련한 청원서를 서대문구에 제출한 상태다. 
박근목 준비위원장 역시 NGO단체인 (사)글로벌평화녹색문화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일본이 강탈해간 임진왜란 전승을 기념한 민족자존의 표석인 국보급문화재인 북관대첩비를 한일북한간 민간외교로 야스꾸니신사로 부터 반환받아 민·관 공동노력과 북한당국의 협력으로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시(현 김책시) 임명동에 복원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작고한 박화목 시인의 아내 김숙희 여사는 『생전에 박화목 시인이 남긴 아름다운 시들은 구전돼 불리고 있지만, 그를 기억하는 세대는 사라지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곡 하나만 인기를 얻어도 작가의 일생을 보장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예술인이 죽으면 그만』이라며 서운함으로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과수원길」과 「보리밭」에 대한 저작권 또한 20년이 지나 소멸된 상태라 받을 수 없고, 생전에 문인들이 모여살던 문화촌에 불하받은 집터와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한채 김숙희 여사는 쓸쓸한 노후를 지내다 문화촌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박화목 시인의 추모비는 부천과 부산 4.19탑에 이미 생전에 건립돼 있지만 그가 50년을 살아온 문화촌 인근에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원래는 「옛생각」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던 「보리밭」을 부르며 실향민으로 아름다운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박화목 시인의 생애가 기념사업회를 통해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