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이라 하면 과거 나이트클럽처럼 젊고 날씬한 20대 남녀만 출입하는 곳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클럽은 크게 인디밴드 공연을 주로 하는 라이브클럽과 춤추기 위해 가는 DJ 및 댄스파티 클럽 등 2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처음부터 차별화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그중 공연장은 60대 할아버지와 외국인 아저씨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새로움을 만나러 클럽을 찾고 있다. 1세대로 90년대 초반 좁고 오래된 건물들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자리잡은 홍대 앞 클럽은 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디밴드를 피쳐링에 최초로 기용하면서 붐이 일었고 당시 현행법상 불법영업으로 단속 및 정지처분을 맡을 때마다 서태지가 클럽문화를 지지하는 등 이슈와 문화계의 든든한 지지를 업고 크게 성장했다. 이 분위기 상승에 힘입어 90년대 후반에는 크라잉넛을 필두로 닥터코어911 등 네오펑크 음악과 전자음악이(일명 테크노,일렉트로니카) 클럽을 지배했으며 기존 방송으로까지 열기가 전달돼 매 주말 인디밴드 라이브프로가 공중파에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이 프로그램에 카우치, 럭스 등 몇몇 홍대앞을 근간으로 활동하던 밴드가 나와 하의를 탈의하는 펑크액션을 취해 홍대앞 인디문화융성에 찬물이 끼얹었다. 방송이 중단되고 홍대앞은 퇴폐와 약이 넘쳐나는 불온한 장소로 국민들에게 각인돼 잠시 주춤했다.
96년말 설계 및 시공상 결함이 발견된 당산철교가 철거된 뒤 전면재공사를 시행할 때, 강남으로 가던 춤꾼들과 클러버들이 홍대앞으로 모이면서 홍대 앞은 다시 한번 독립문화의 부흥기를 맞았으며 비슷한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현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양현석씨가 오픈한 NB(Noise Basement: 소음지하실이란 뜻) 클럽의 붐으로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춤과 음악 문화는 급속 팽창하게 된다. 인디음악과 무명화가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1세대 허름한 클럽과 서태지-펑크가 일으킨 클럽씬의 형성, 연이어 대형자본상업클럽과 공연장까지. 이때부터 힙합음악과 락음악의 소모적인 대결의 씨앗이 창작자들로부터 시작됐으며 락과 힙합댄스 클럽 모두를 이용할 수 있었고 홍대를 전국적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던 매달 마지막 금요일 열던 『클럽데이』는 2011년 초 수익배분 문제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클럽데이는 미군범죄문제, 야간소음, 취객 성폭력 문제 등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지만 홍대 앞을 지금처럼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게 한 최대 공신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올 2월부터 라이브페스타가 따로 진행 중이며 각각의 댄스클럽은 연일 긴 줄을 이루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정보
홍대 앞 클럽 A to Z
sdmnews 김지원 기자
2012-09-06 17:02
90년대 초 낡은 건물에 자연발생적으로 클럽 생겨
클럽데이 2011년 수익분배 문제로 사라져
클럽데이 2011년 수익분배 문제로 사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