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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클럽 A to Z
sdmnews 김지원 기자
2012-09-06 17:02
90년대 초 낡은 건물에 자연발생적으로 클럽 생겨
클럽데이 2011년 수익분배 문제로 사라져
클럽이라 하면 과거 나이트클럽처럼 젊고 날씬한 20대 남녀만 출입하는 곳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클럽은 크게 인디밴드 공연을 주로 하는 라이브클럽과 춤추기 위해 가는 DJ 및 댄스파티 클럽 등 2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처음부터 차별화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그중 공연장은 60대 할아버지와 외국인 아저씨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새로움을 만나러 클럽을 찾고 있다. 1세대로 90년대 초반 좁고 오래된 건물들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자리잡은 홍대 앞 클럽은 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디밴드를 피쳐링에 최초로 기용하면서 붐이 일었고 당시 현행법상 불법영업으로 단속 및 정지처분을 맡을 때마다 서태지가 클럽문화를 지지하는 등 이슈와 문화계의 든든한 지지를 업고 크게 성장했다. 이 분위기 상승에 힘입어 90년대 후반에는 크라잉넛을 필두로 닥터코어911 등 네오펑크 음악과 전자음악이(일명 테크노,일렉트로니카) 클럽을 지배했으며 기존 방송으로까지 열기가 전달돼 매 주말 인디밴드 라이브프로가 공중파에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이 프로그램에 카우치, 럭스 등 몇몇 홍대앞을 근간으로 활동하던 밴드가 나와 하의를 탈의하는 펑크액션을  취해 홍대앞 인디문화융성에 찬물이 끼얹었다. 방송이 중단되고 홍대앞은 퇴폐와 약이 넘쳐나는 불온한 장소로 국민들에게 각인돼 잠시 주춤했다. 

96년말 설계 및 시공상 결함이 발견된 당산철교가 철거된 뒤 전면재공사를 시행할 때, 강남으로 가던 춤꾼들과 클러버들이  홍대앞으로 모이면서 홍대 앞은 다시 한번 독립문화의 부흥기를 맞았으며 비슷한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현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양현석씨가 오픈한 NB(Noise Basement: 소음지하실이란 뜻)  클럽의 붐으로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춤과 음악 문화는 급속 팽창하게 된다. 인디음악과 무명화가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1세대 허름한 클럽과 서태지-펑크가 일으킨 클럽씬의 형성, 연이어 대형자본상업클럽과 공연장까지. 이때부터 힙합음악과 락음악의 소모적인 대결의 씨앗이 창작자들로부터 시작됐으며 락과 힙합댄스 클럽 모두를 이용할 수 있었고 홍대를 전국적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던 매달 마지막 금요일 열던 『클럽데이』는 2011년 초 수익배분 문제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클럽데이는 미군범죄문제, 야간소음, 취객 성폭력 문제 등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지만 홍대 앞을 지금처럼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게 한 최대 공신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올 2월부터 라이브페스타가 따로 진행 중이며 각각의 댄스클럽은 연일 긴 줄을 이루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