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탐방
개인주택을 박물관으로 만든 김형준 박사의 ‘꿈’
sdmnews
2024-07-06 14:29
30년간 모은 소화 12년부터의 목수연장과 창호 2200점 전시
“한옥 좋아서 시작한 일” 한국의 목수 100인전 집필 준비
한달간 전시후 철거예정, 주민 원하시면 개방해 공유
일청 김형준 박사가 30년간 수집한 목수연장과 한국의 창호를 전시해 눈길을 끈다.<br> 김박사는 길상 만(卍)자가 새겨진 복합분합문은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김형준 박사의 자택 박물관 입구 모습이다.(위) <br>아래는 전문가를 초청해 이름과 쓰임새와 연도별로 일일이 분류된 다양한 종류의 목수연장 2000점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전시해두었다.
염전에서 쓰던 무자위(수차)
창호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벽면을 전시해 두었다. 오른쪽은 창호에 무늬를 넣어 글귀를 써두었다.
전북고창 칠영정의 유익서 대목수의 연장들(왼쪽) 목수연장은 용도별 연도별로 전시해두었다.<br>(중앙)나무로 만든 냉장고다. 위에 얼음을 채워 사용했다.(오른쪽)
명지대학교 부근 홍은동 한 골목가 단아하고 예쁜 단독 주택 1층에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목수들의 연장이 정갈하게 전시돼 있다. 1층 문 앞에 붙어 있는 「한국의 창호 그리고 목수연장」포스터는 개인주택이라기 보다는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한다.
이 곳에는 경영학박사로 30여년간 대학강단에 섰던 일청(一靑) 김형준 박사가 30년간 수집해온 진귀한 한옥과 창호, 목수연장 총 2200점이 전시돼 있다.
그 중 소화12(1937년)년부터 사용됐던 목수연장 21종에 2000여점, 고택창호는 문합문, 홍살문 포함 56종 120점에 이른다.

김형준 박사는 전문가를 초청해 자문을 구해 다양한 목수연장들을 용도별로 분류해두었다. 디자인 교수로 활동중인 김박사의 딸과 아들이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설명서를 만들어 액자로 제작해 걸어 작지만 박물관 못지 않은 전시실이 만들어졌다.
김 박사는 『한옥에 관심이 있어 지방을 돌다 보니 목수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자료를 수집하면서 모으기 시작한 목수 연장들은 풍수용 자를 비롯해 대패, 줄자, 줄날, 후비칼, 등 21종으로 시기별, 용도별로 다양한 모양과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연장에도 일본풍이 섞여 있어 차이를 띤다.

김박사가 모은 목수연장 중 고창의 윤익선이라는 대목장이 지은 정자 칠영정에 사용됐던 연장들도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또 염전에서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염전 무자위(수차)를 비롯해 도리 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건너지르던 하중보 와 판장문, 구름모양을 정교하게 장식해 놓은 대들보 머리도 볼수 있다.
경북고령이 고향인 김박사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집을 마련해 목수연장과 고택 창호를 비롯해 벼루와 자수, 옹기, 맷돌등 그가 수집해온 자료들을 모아 박물관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사 도중 문제가 생겨 그 꿈을 접었고, 그때 모아둔 진귀한 목공예품을 자신의 집에 옮겨와 전시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내가 좋아서 시작한 수집이었는데 하다보니 귀한 자료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고 말하는 김박사는 초기에는 항아리를 모았는데 집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모두 처분했었다. 그 뒤에는 목수연장과 자수, 맷돌, 벼루, 담배갑, 한옥기와 등을 하나씩 모았다.
김박사는 『목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인전(梓人傳)에 따르면 목수들은 통솔력이 강하고 계획적인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목수라는 일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일이기에 그랬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실제 재인전에는 「목수가 왼손엔 긴 자를 오른손엔 막대기를 쥐고 가운데서, 가옥에 소요될 목재의 양을 계산하고 목재를 쓸 수 있는지 살펴보더니, 막대기를 휘두르며 『도끼!』하고 말하니 도끼를 잡은 공인이 오른쪽으로 뛰어갔고,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톱!』하고 말하니 톱을 쥔 공인이 왼쪽으로 뛰었다.」라고 적혀 있어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던 대목장들의 성품을 짐작할수 있다.

우리나라의 집이나 가구들은 못을 이용하지 않고, 홈을 파서 맞춰 끼워넣는 방식도 쓰지만, 고택의 대문이나 창고 문등에는 못을 사용하는데 이 못 역시 시대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르다.
『조선시대때 문을 고정하던 못은 투박하고 납작한데 비해 그 이후의 못들은 입체적이고 디자인을 곁들인 못도 있다』며 전시중인 문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대목장은 집을 만드는 목수였고, 소목장은 가구등 소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전시품 중에는 고택창호와 문들도 많은데 이중 눈에 띄는 네짝의 복합분합문에는 통각으로 만(卍)자가 새겨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김박사는 『만(卍)자는 흔히 불교에서 쓰이는 글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나타낸다는 길상 「만」자로 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집 문에 새겨놓았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을 꾸민지 열흘 정도 됐고, 한 달 정도 전시하고 정리할 계획이라며 노력과 공을 들인 수집품이어서 서대문주민들에게는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망을 전한다.
지금은 한국 100인의 목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책을 준비중이라고 설명하는 김 교수는 『쇠도 녹슬고 나무도 썩지만 잘 보존하면 후세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역사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가까운 주민여러분이 언제든 연락주시면 집의 문을 열고, 나의 수집품을 소개하겠다』고 말한다.

(방문문의 전화 02-337-880)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