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주차장으로 사용중인 장희빈 이궁터와 관련한 자료는 본지 우원상 편집고문이 저서 「홍제천의 봄」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영욕으로 점철(點綴)된 옛 연희궁을 조선 초에는 서이궁(西離宮)이라 하여 제2대 정종(定宗 1398~1400)이 태종에게 선위(禪位)한 뒤 이곳에 머물렀다.
세종(世宗)이 부왕 태종(太宗 1400~1418)을 위해 세종 2년(1420)에 중건했으며, 세종 7년(1425)에 「연희궁」이라 명명하고 세종 자신도 자주들렀었다. 이래서 세종의 효성이 깃든 궁이라고 오늘에 전해 온다. 한편 궁내에 누에를 키우는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으며, 세조(世祖~1455 ~1468)도 서잠실(西蠶室)이라 부르며 양잠(養蠶)을 독려했다.
성종(成宗 1469~1494) 때에는 그 부근에 뽕나무를 많이 증식시켰다. 이러하던 성역이 연산군 11년(1505)에 연희궁을 개축해 연회장으로 꾸며 놀아나면서 궁으로서의 품위가 땅에 떨어졌다.
그래도 영조(英祖 1724~1776) 때에 와서 연희궁의 연(衍)자를 연(延)자로 고친 것을 보면 영조대 까지도 궁의 면모는 남아 있었다고 본다. 그 후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나 1900년초의 「연희궁 터」라는 사진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사진 속의 배경이 지금의 위치를 찍어서 바로 여기라고 지목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지만 인삼업체만 들러보고 돌아가는 서대문에 역사적 장소가 남아있음은 어쩌면 감사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역사적 가치를 찾아보자.
정보
FOCUS/장희빈 이궁터는 어떤 곳?
sdmnews
2012-07-31 10:29
역사적 고증통해 문화적 가치 찾는 노력 아쉬워
연희동 이름이 유례된 ‘연희궁’있던 곳
연희동 이름이 유례된 ‘연희궁’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