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이른 저녁 연희문학창작촌에서는 「0시 북항에 도착하는 아무튼 씨」라는 제목으로 목요 낭독 극장의 문을 열었다. 최근 「북항」이란 시집을 내고 거의 5년만에 찾아온 안도현 시인과 20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해 신선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중일 시인을 초대해 두 시인의 작품을 테마로 마임, 댄스, 래핑, 첼로와 기타 연주를 곁들인 다채롭고 정겨운 시낭송회를 꾸민 것이다.
이 날 낭송회는 시인이자 희곡작가인 이윤설 씨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오프닝으로 포근한 음악연주가 시작됐다.
이어서 1부 순서로는 김중일 시인의 시를 모티브로 한 노래와 시낭송, 「한 마디 해 봐」란 김중일 시인동인「불편」멤버들의 컷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으며 최근 두 번째 시집을 낸 김중일 시인과의 만남이 진행됐다. 독특한 시선과 담백 기발한 표현이 인상적인 김중일 시인은 20대 전까지 문학에 관심도 없는 삶이었음을 고백했고 대학시절 만난 시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을 시인으로 살게 한 순간을 담담히 털어 놓았다.
그래선지 누구나 살면서 갖게 되는 크고 작은 열망이 있는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에너지가 폭발에 이르고 성공 혹은 상처로 변해 무관심해졌다가 소멸의 자리에서 다시 생성되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시가 주를 이룬다.
2부 순서로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표현한 마임과 시낭송이 진행됐고 「한 구절 시낭송」이란 코너에는 안도현 시인이 직접 나와 검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영상음악과 더불어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의 시인으로 유명한 안 시인은 시인 백석과 북방 문화를 선망하는 점을 솔직히 밝히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좋고 쉬우며 인상적인 시를 전달하는 시인 이미지와 실제 생활인 안도현 선생님의 차이가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젊고 훌륭한 후배 시인들을 보면 잠이 안 온다, 또 가볍고 쉬운 시인 이미지로만 사람들이 착각하기에 이번엔 좀 길고 어려운 시집을 냈다』며 재치 있게 답변 했다.
시를 쓰는 이유와 일상을 묻는 대목에서는 『굳이 젊은 사람도 많은데 노구를 이끌고 시를 써야하는가 하는 내적 고통과 자문에 계속 시달렸다』며 『가만 생각해보니 시를 한편도 발표하지 않은 기간이 지난 4년동안 공교롭게도 어느 시기와 일치한다. 주변 시인들마저 손놓게 만든 현실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5공 때와는 또 다르게 문화 예술의 척박한 시기임을 자각하고 선배 시인으로 책임감에 시달렸다』며 스스로에 엄격한, 수없는 퇴고가 있었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더 갈고 닦는 시간이 있었음을 독자들과 시민들 앞에 터놓았다.
시인이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매일 시 쓰는 게 슬럼프다. 쓰고 나서 왜 이리 썼을까 반성은 하지만 고개 갸웃한 적은 한번도 없다면서 문학에 대한 회의는 없다』고 답변해 안도현 시인의 솔직하고 내밀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시인은 운명처럼 쓰게 된 거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기형도 시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건 정말 안타깝다며 세상에 오래 길게 살고 시를 써내야 예술이란 반열에 들 수 있다고 했다. 똑똑하고 인상 좋고 기운이 맑은 아저씨 모습의 안 시인은 모름지기 시인은 김수영 시인처럼 깊게 패인 눈에 날렵한 턱선, 마른 몸매여야 한다며 김수영 시인이 자신의 시인 이상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중일 시인은 자신은 1부 순서가 아니라 안도현 시인의 오프닝이라며 시종일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참석한 구민 김재희 씨(서대문구 홍제동)는 『관객들에게 문학과 시인을 친근하게 소개할 의도였겠지만 지나치게 사생활 캐기 질문과 농담이 많아 우리나라 대중매스컴문화를 시낭송 자리에서까지 보게 되는것 같아 단 하나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집 내용, 시와 연관 지어 문학적 대답을 끌어내는 출연 시인들의 답변이 훌륭했으며 그들의 깊고 고유한 시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아 매우 경이롭고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야외극장의 작지만 아름다운 무대와 연희문학 창작촌의 밤공기, 시낭송이 잘 어우러져 풍성함을 안기고 막이 내린 이날 목요낭독극장은 즉석 사인요청과 담소를 나누느라 관객 대부분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