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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도시가 더 외로운 이유 =공동체 개념 없기 때문”
sdmnews 김지원 기자
2012-05-10 16:43
서대문구, 마을공동체 추진 위한 순환교육 실시
“민관협동자치-주민 주도에 관청은 지원 중심”
마을공동체와 관련된 특강 장면.

지난 2일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는 마을공동체 이해확산을 위한 마을공동체 특별교육이 열려 주민자치위원 및 담당부서 직원 및 시민 단체 등 200여명이 모여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진아 마을 마을지원실장이 강의 단상에 올라 『서울은 타 지역에 살던 사람이 많이 유입되면서 보통 아파트에 많이 살고 있는 현실이다.

서대문에는 단독주택과 다가구 연립이 많아 마을이란 외형이 그나마 보존돼 있다』며 서대문이 마을공동체 구현에 좀 더 가까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 『마을은 걸어서 10~15분 거리의 생활 단위를 일컫는데 비슷한 말 동네는 동 단위로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개념을 설명하면서, 『어디든 살다보면  여러 고통 있지만 서울에 살면서 개인이 단절되고 삭막함과 고독 속에 사는 게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며 소통이 잘 되며 돕고 사는 마을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또, 국내·외 마을공동체의 발전역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서울의 한 아파트 12층에 이사 온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인사 쪽지를 남겼는데 답장이 여러 장 붙으면서 그간 서먹했던 이웃 모두가 친해진 사례』를 소개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목공 배우는 게 꿈인 남편이 어떻게 시작할지 모를때 마을에 쪽지를 붙여 믿고 맡길만한 동네 전문가에게 배우면 된다. 한 예로 강북구의 한 분이 목공을 배워 목공소를 차리고 나눔의 재미로 수강료 10000원을 받고 가르쳤는데 인기를 끌어 대기해야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는 사례도 소개했다.

또, 서 강사는 『우리 모두 사회에서 인정받길 원하는 욕망이 있다』면서 『마을 활동의 주체가 되는 기회 주어진다면 모두 대부분 참여하고 좀 더 훈훈한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카지노식 자본주의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생각이 팽배해있다. 북·서유럽 경우 시장에서 과일을 팔면 고르지 않고 그냥 가져간다. 여행 중에 늘 하던대로 과일을 고르다 혼쭐났다』며 『나만 늘 좋은 걸 늘 고르면 누군가는 계속 나쁜 과일을 먹게 된다』는 그들의 시각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와 사회가 등록금을 대줬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우리 세태를 꼬집었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면 국가와 자치단체로부터 받기만 하던 경제에서 경쟁은 완화되고 협동은 높이는 사회를 구축 할  수 있다』 도시농부 사례 또한 들었다. 서 강사는 『텃밭을 분양받아 10평 땅에 상추를 심었다.  자연스레 옆집 아랫집 문을 두드리게 돼 이웃과 인연을 맺었다』 말했다.
또, 인천시 부평 문화의 거리 한가운데 생긴 소규모 공원의 경우 『불경기에 상인들이 먼저 고민해 거리 한가운데 쉼터 겸 작은 공원을 만들었고 쇼핑객들이 오가며 쉴 수 있게 한 것』이다. 『행정기관은 약간의 돈과 도움을 줬을 뿐이고 주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 이라 강사는 강조한다. 반대의 경우는 상인 합의도출도 어렵고  또 손님에게 자신들이 주도해 생긴 공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활기찬 상권 분위기를 되찾게 된 사례를 들려줬다.

두 번째로 이창환 강사는 성미산 마을 만들기에 대해 경험을 들며 설명에 나섰다.
『성미산 마을은 마포구 월드컵 경기장 바로 옆 성미산이라는 작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하며 해발 66m로 오르는데 5분 걸리고 30000평 규모인 마을을 통과하는데 10분 채 걸리지 않는 아담한 곳』이라 소개했다. 약 10년전 서울시가 북한산~ 성미산 사이를 이미 개발해서 성미산만 홀로 남아있을때 이곳 야간에 나무 1000그루 벌목하는 등 개발하자 주민들이 세 달 동안 산에 천막을 치고 농성해 지켜냈다.  당시 낮과 밤에 산에 올라 지키며 나누었던 사람 사는 얘기들을 모아 마을공동체를 자연스레 실현해왔다. 대표적 사례로는 ▲대안학교 ▲두레 생협 ▲마을 어린이집 ▲공동부엌 등이 있으며 어린이집 경우 1994년 전국최초로 보증금을 십시일반으로 모두 1인 1권리로 지어낸 공동육아협동조합이다. 「우리 어린이집」의 대기자가 폭주해 「날으는 어린이집」이 이듬해 생겼다.

또, 2007년부터는 성미산 차없는 거리축제를 2008년부터는 골목길 축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어른들의 정서순화를 위한 동아리가 사진, 인문학, 시, 음악, 영상, 아마 밴드,연극 등 다양하게 잘 운영되며 마을소극장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또, 되살림 가게에서 본인은 필요없지만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대행 해주는데 연 순이익이 150만원이다. 직원이 10명이 있어 돌아가며 활동해 수익성은 낮지만 그보다 자원을 교환하고 주민에게는 필요하단 생각으로 운영한다. 이처럼 강사는 『마을기업이나 마을공동체 시범사업은 일반가게에서는 수익 상 못하지만 주민에게는 꼭 필요한 것을 아이템으로 지속가능성을 보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안전 면에서 공동체 소통 등이 원활한 마을 경우 잘 아는 마을 사람이 최소 20명에서 50명이 된다.  맞벌이 부부의 노부모나 자녀들이 홀로 식사할 때, 외출을 할 때, 오가면서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어 마을안전성이 증가한다.
서로 배우고 싶은 기술이나 예술,문화 교루를 통해 함께 돕고 산다는 마을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도시에 생겨난다』고 소개했다.

해외 사례로 미국 코닥본사가 있었던 뉴욕주 로체스터 시의 경우를 들며 시민 중 60000명이 코닥근로자였다 불황기 감축 때 7000명으로 줄었다. 인구 28% 감소, 빈곤율이 증배됐고 지방세원이 대부분인 시 재정이 9억 달러나 줄었다. 파산 위기 직전의 로체스터를 살려낸건 주민운동가 출신 시장이 당선돼 추진한 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 주민들이 만드는 마을)이란 운동이었다. 우리의 동 정도규모인 2만명 단위의 섹터로 ▲위원회를 구성해 ▲시·구의회 협의를 거쳐▲주민주도 혹은 시나 구 주도의 사업으로 나눠 추진해 ▲황폐한 도시와 마을을 하나씩 손봐나갔다.  『사업이 성공하려면 마을규모의 주민들이 협력해 현장에서 사람 중심으로 관과의 분담이 중요하다』 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이렇게 마을공동체를 시행하려면 경제력과 의지가 있었던 성미산 마을과 달리 주민이 관과 협력해 추진해아 하고 주민토론이나 마찰을 해결할 장소가 필요하고 이동이 잦은 기존의 마을에서 중장기적인 시각의 주민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난관이 있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