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새터새바람
머리를 숙이면 부딪치지 않는다
sdmnews 편집국장 옥 현 영
2012-05-10 16:27
눈높이 맞추면 자연히 아버지의 권위 생길 것
빚 갚으러 온 자식과 빚 받으러 온 자식
서대문에서 수년째 호떡을 구워 팔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파란만장한 중년을 보내고 지금은 외로이 홀로 살고 있다. 한때는 돈도 많이 벌었는데 남의 이야기를 잘 믿어 벌어놓은 돈을 모두 투자해 사기를 당했고, 아내는 병들어 사별했다. 그 와중에 집도 없이 떠돌이 신세가 되다보니 하나뿐인 딸도 그런 아버지 싫다며 떠나 얼굴을 못본 지 10년도 넘었다고 했다. 지금은 안보고 사는게 익숙해 소식도 궁금하지 않단다.

정말 자식이 안 궁금할까? 혹시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외롭지 않은 척, 보고프지 않은 척 하다 보니 어느덧 외로움에 익숙해 진 것은 아닐까?

최근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사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악화로 아버지의 「힘」인 경제력이 약해지면서 그나마 가정에서의 권위도 무너지고 있다. 경제활동을 핑계로 등한시 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더 이상 과거처럼 가부장제도의 틀 안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사회는, 가족의 구조는, 급격히 변하는데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들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표류하게 된다. 반대로 가정의 불화는 90%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맹사성은 19세 과거에 급제해 관찰사에 부임해 명망 높은 고승을 찾아 물었다.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에 고승은 차나 한잔 마시라며 찻잔에 물을 부었다. 그러나 잔이 넘쳐도 물 붓기를 그치지 않자 맹사성이 화를 내며 자리를 뜨려했다.

이에 고승이 말하길 『찻잔에 물이 넘쳐 옷을 적시는 줄은 알면서도 어찌 지식이 넘쳐 자신을 망치고 있음은 알지 못하는가?』하고 질문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방을 나서던 맹사성은 문틀에 머리를 부딪히고 만다. 이를 본 고승이 한마디를 던진다.
『머리를 숙이면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정에서의 권위가 아버지라고 해서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일, 그 쉬운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머리를 숙이면 아이들의 고민이 보이고, 해주고 싶은 일들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아버지의 권위는 자연스레 살아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두가지로 맺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생에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 그 은혜를 갚으려 태어나는 자식과 받을 빚이 너무 많아 빚 받으러 태어난 자식, 이렇게 말이다.
당신은 어떤 자식이었으며 어떤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가?
가족의 달에 새삼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