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11일은 제 17회 입양인의 날이다.
올해 3월 창립 50주년을 맞은 동방사회복지회의 근간이 된 미혼·양육모와 아동보호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김진숙 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렵고 힘든 고민이 바로 미혼모와 입양지원 사업』이라고 털어놓는다.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된다. 아동복지 중 하나인 가정이 있는 아동의 삶을 위한 입양에 부정적인 국내 상황으로 해외입양이 시작됐음에도 혹자는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등 오해가 빚어낸 구설을 피하기 어려웠다.
『동방사회복지회가 그간 23만명 정도의 입양을 지원했는데 이 중 국내 입양은 7만명에 못미친다』고 말하는 김진숙 회장은 『2015년 시행된 한부모가족지원법으로 인해 입양기관이 갖춘 미혼모자시설을 폐쇄하고, 관할 자치구를 중심으로 미혼모의 지원을 돕게 하는 등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미혼모를 위한 후원자 모집도 가장 어려운 숙제다.
김회장은 『입양이란 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본 미혼모와 아이의 성향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도 정부가 아동권리보장원을 만들어 입양정책을 획일화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무책임함을 지적했다.
변화된 정책의 중심에는 지난해 일어난 「정인이 사건」이 촉발제가 됐다. 이런 제도변화로 인해 미혼모들에게는 더욱 문턱이 높아졌고, 입양기관의 지원이 예전처럼 원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김회장은 『가정폭력으로 아동보호시설에 오는 아이들의 75%는 친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 경우다. 입양가정의 경우는 0.2%에 불과하다』라면서 이 역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의 연장선상임을 강조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김진숙 회장은 동방사회복지회의 설립자인 고 김득황 박사를 돕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가는 숙명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28살이었던 설립초기 그만둔 직원 대신 잠시 일을 도우러 왔다 수년간 일을 하게 됐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했지만 사람들의 오해와 차가운 시선은 계속됐고 실망감에 다시는 사회복지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동방을 떠났었다』고 당시를 회고하는 김 회장은 『그러던 중 남편과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재활과정을 돕게 됐고, 장애인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후 그녀는 대학원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뒤 사회복지 박사까지 공부를 마쳤다.
1993년 그녀가 적임자를 찾지 못하던 동방재활원을 찾으면서 규모가 커진 동방사회복지회를 김진숙 회장의 남편이 맡았고, 지금은 김회장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1995년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5년간 재직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사업도 그때 추진된 일들이 많았다.
『2000년 중반까지는 국내 입양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공개 입양도 늘었었는데, 최근은 출산률 저하고 미혼모 역시 줄고 있는데다 한부모 가정지원법 제정 이후 국내 입양은 축소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미혼모 지원사업이라면 에너지를 얻는 사업은 시니어클럽을 통해 장·노년층의 지원사업이다.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처음 시작한 서대문시니어클럽은 현재 동방평택복지타운에도 문을 열면서 노인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있다.
『사실 노인복지사업인 시니어클럽은 교육이나 취업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며 행복한 노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어서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고 전한다.
김진숙 회장은 앞으로는 고학력, 고소득을 경험한 틈새 남자 어르신을 위한 차별화된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남성 어르신들은 청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아 사회성이 더 결여된다. 오히려 고립되기 쉬운 남성 노인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복지는 극성맞아야 하는데 동방의 분위기는 좀 차분한 편』이라고 덧붙이는 그녀는 『그동안 코로나로 대면하는 지역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나아져 다양한 복지사업이 조금더 성장해 가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