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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이발관 조 일 봉 사장
sdmnews
2022-03-10 15:45
55년간 이발소 운영, 이웃 위한 봉사의 손길 이어와
이발소 앞 사랑의 쌀독 1년이면 40~50kg 이웃 밥상에
북가좌동 이리이발관 조일봉 사장
이리 이발관 앞 사랑의 쌀독

『북가좌초등학교자리는 원래 산이었지』
1969년 서울에 올라와 북가좌동에 터를 잡은 북가좌동 이리이발관 조일봉 사장은 55년 가재울을 이렇게 기억한다.
지금의 북가좌초등학교 뒤편엔 공동묘지가 있었다. 채소 밭이 많았고, 비가 오거나 겨울이면 진창길이 돼서 연탄재를 부어서 젖은 길을 다졌다.

그 곳에 지금의 도로가 난 것은 1971년 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생긴 2차선 도로가 큰 공사 한번 없이 50년넘게 그대로 남아 있다. 큰 회사라고는 합동 과학공장이 있었고, 여성들의 속옷공장과 유리공장, 목공소 아크릴 공장이 기억난다.
『사람은 그때가 더 많이 살았어. 싸움을 안하면 하루가 안 지나갔지』
그만큼 팍팍하고 어렵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불광천이 정비되지 않을 때여서 하천이 굽이굽이 흘렀고, 말이 끄는 리어커에 모래를 실어 벽돌공장에 실어다 주고 품삯을 받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도 있었다.

익산이 고향인 조일봉 사장은 1965년부터 이발을 배웠다. 기술만 익히면 부지런함을 곁들여 먹고 살수 있으리라는 혜안이 있었다. 69년만 해도 신촌에서 모래내까지 갈수 있는 도로가 없었다. 모래내 시장에는 채소밭이 많아 수색쪽에서 넘오와 장을 봐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서가 영천에서 이발소를 했지.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소개를 해주어서 서울로 올라왔어』
그렇게 북가좌동에 5만원짜리 월세를 얻고 이발소를 시작한지 55년이 지났다. 지금은 7시면 이발소의 문을 닫지만 예전에는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9시에 닫았다.

성실하고 솜씨좋은 이리이발관은 가격도 싸서 지금도 이발은 5000원, 염색은 8000원만 주면 할수 있다. 전문면도사가 있지만, 이발과 면도를 같이 하면 7000원이면 된다. 염색을 하면 면도는 무료고 커트와 면도 염색을 같이 하면 12000원으로 1000원을 깍아준다.
이렇게 착한가격에 정통 이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 단골만도 5000명이나 된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새벽부터 예약이 줄을 잇는다.55년동안 사연많은 손님들을 겪었지만, 한 손님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22통장을 하던시절 적십자 회비를 걷는일을 통장이 맡았는데 2만원짜리 전세에 사는 주민이 남대문시장에서 넘어져서 움직일수 없을 만큼 다쳤다. 적십자 병원으로 달려가 20일간 무료 치료권을 받아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건강을 회복한 이웃이 달걀 한판을 사왔더라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지』
그는 1980년에는 이발소를 세내놓고 오만으로 날아가 현장일을 하기도 했다. 오만에서 돌아와 83년부터 지금까지 지역에서 궂은일 마다 않고 앞장서 왔다.

“83년부터 서북병원 결핵 환자들의 머리 손질을 34년간 해오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봉사를 할 수 없어서 잠깐 쉬고 있어요』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영방송 프로에 출연해 15분간 소개되기도 했다.
봉사를 시작하면서 얻은 아들 조성국 사장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이리이발관을 운영한지 10년이 됐다.
이발은 단순한 오래된 기술같지만, 매번 공부를 해야 한다. 조성국 사장은 정식으로 기술을 배워 전국 선수권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리이발소 앞에는 사랑의 쌀독이 있다. 쌀을 기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쌀독에 채워넣고, 쌀이 필요한 사람은 쌀을 가져간다.
『일주일에 보통 10㎏정도, 일주일에 40~50㎏정도의 쌀이 누군가의 밥상에 오른다. 쌀독을 봐서 비어 있으면 내가 채워넣기도 한다』
조일봉 사장은 아들이 태어난 후 84년부터 해오던 사랑의 쌀독만큼은 아들에게도 이어갈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해 두었다.

북가좌동은 그에게 고향과도 같다. 일가를 일구고, 자식을 낳고, 이웃들과 벗삼아 살아온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더 그렇다.


< 서대문문화원 향토사 발췌
취재, 글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