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문화가 확산되면서 자동차, 장난감등 이동가능한 물품 뿐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집을 공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홍제2동에서 40년간 한 주택에서 거주해온 정필기 어르신은 이미 10년 전부터 자신의 집 2층을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공유해 왔다.
당시만 해도 주거 공유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정필기 어르신의 생각은 좀 남달랐다.
『아이들이 성장해 출가하면서 2층 방들이 모두 비었다. 주변에 지하철역도 가깝고 해서 3호선을 따라 있는 대학을 찾아보니 동국대학교가 생각이 나서 직접 학생처장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방을 내어 주겠다고요. 바로 학생과 연결이 됐고, 그때부터 홈 쉐어링을 하게 됐다.』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던 학생이 3년뒤 졸업을 했고, 10년간 5명의 학생이 정필기 어르신의 집을 거쳐갔고, 현재는 서울여자간호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장혜빈 학생이 거주중에 있다.
제주도가 집인 혜빈양은 『서울의 집 값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중에 쉐어하우스를 알게됐고, 1학년 입학과 함께 입주하게 됐다』면서 『제주도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기 때문에 집 같은 생각이 들었고, 가끔 따뜻한 국과 밥을 차려주시기도 하고, 챙겨주셔서 가족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지난 2014년부터 서대문구가 공식적인 홈쉐어링 실시를 위해 신청자를 모집했고, 정필기 어르신도 함께 신청을 했다. 당시 3명의 홈쉐어링 신청자들이 대학생 4명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했던 것이 현재는 7가구로 확대됐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140가구 정도 된다. 서대문구는 홈쉐어링 협약 가구에 대해 1가구당 100만원 까지 가구 교체비용이나 장판, 도배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홈쉐어링은 6개월에 한번씩 재계약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학교를 졸업하면 자동 해지된다.
정필기 어르신은 방은 무료로 제공하고, 수도나 전기세 정도의 기본적인 비용만 받지만, 입주학생에게는 조건이 하나 따른다. 꼭 우등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같이 살던 학생들이 훌륭한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갈때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함께 살면서 손주 생각도 든다』는 정필기 어르신의 부인 정진임 할머니(81)는 『하지만 집을 떠난 뒤 전화한 통 없는 학생들을 보면 서운한 마음도 없지는 않다』고 속내를 말한다.
정필기 어르신은 올해로 90이 되는 6.25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 2학년에 전쟁이 발발해 참전했다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게됐다. 대령으로 전역한 어르신은 대지 100평, 건평 50평의 현재 주택에서 부인인 정진임 할머니와 함께 2남2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정필기 어르신은 이미 전쟁을 겪은 자신의 경험이 담긴 「전쟁과 우정」과 「환상적인 여정」등의 수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 시를 배워 자신의 감정이 담긴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구순을 바라보며 자서전 성격의 시 「기사생(己巳生) 발자국을 더둠어 본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나의 모교인 청주고등학교에서 졸업생중 6.25 전쟁 참전자를 초청해 명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갖겠다며 초청을 했다. 100년이 넘은 학교였기에 참전자가 120명 정도 됐고, 그중 살아있는 사람은 43명이었다.』고 말하면서 『보훈처가 4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교정에 6.25참전 선배들의 명비를 세운 일은 참 보람을 느끼게 했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거실에는 전쟁에 나가며 어머니가 떠올라 쓴 시가 액자와 함께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