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을 거쳐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목도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대선결과를 보며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이번 대선은 지역구도가 완화되었지만 세대갈등은 분명하게 드러난 선거였고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로 점차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에는 젊은층과 고령층이 서로를 혐오하는 세대혐오의 양상마저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무조건 갈등이 없어야한다는 식의 전체주의적 발상에 반대한다. 적절한 갈등은 토론을 유발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서로 욕을 하고 혐오를 하는 갈등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합리적 토론을 방해한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인가?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가치는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대혁명의 구호였던 자유, 평등, 형제애이다. 우리는 한때 민주주의를 자유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고 자유를 얻기 위해 수 십 년의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자유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경쟁을 하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은 「20대80 사회」,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불평등으로 나타났고 국민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는 다시 평등을 외치고 있다. 나는 오늘날 평등과 복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매우 옳다고 생각하며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형제애 또는 연대에 대한 고민이다. 자유와 평등은 모두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그러나 형제애가 빠진 자유와 평등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자유가, 또 다른 누군가는 평등이 우선이고 또 각자가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이 다른 현실에서 다툼과 갈등은 형제애라는 최소한의 금도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룰도 없이 사생결단의 싸움을 우리는 「개싸움」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청년과 노인의 어려움은 한국 민주주의에 형제애가 부족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긴 시간으로 보면 청년, 중장년, 노인은 모두 서로의 형제(또는 자매, 남매)이다. 그런데 형제애는커녕 막상 가장 어렵게 사는 청년과 노인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고 일부 어려운 청년들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을 빨갱이 정책이라고 역정을 낸다. 만약 내 조부모와 내 손주라도 그럴까? 나는 이것이 형제애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대선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현재진행형이며 또 계속 진화해야 한다. 자유도 평등도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형제애는 더욱 중요하다. 가장 발전된 복지국가의 하나인 스웨덴은 약 100년전부터 국가를 하나의 「집」으로 모든 국민들을 하나의 「가족」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이제 그런 것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선진국 따라잡기의 명수가 바로 우리 아닌가?
지난 수개월 간 우리는 위대했고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음호에는 형제애 없는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후배 청년들의 리얼 생존기를 다룰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글 박운기 시의원·더불어민주당 서대문 2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