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전인 1985년, 최호준 대표가 경기대 학생처장을 지내던 시절, 사회복지학을 전공중이던 정진필이란 학생이 찾아왔다. 『자신이 손말사랑회를 조직했으니 후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장애 가족을 둔 정씨는 밤에 수위로 일해 생활비를 벌면서 단과대 수석으로 받은 장학금의 절반을 장애인복지기관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해 추석, 최 교수는 정씨가 돕던 오산의 에바다농아원을 찾았다. 그 만남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최 대표는 그 후로 장애인 아동을 후원하는 일에 동참했다. 처음에는 3명이 모여 시작한 장아람이 지금은 후원회원 2000명의 단체로 정상했다. 20여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장아람은 최소 인원으로 장애아를 후원하는 조직으로 꾸려왔다.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자 수차례 시도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좌절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던 중 제자의 도움으로 1999년 비로소 후원 법인으로의 명칭을 얻어냈다.
최 대표는 『장아람이 지향하는 바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건물인 아트레온에 1개 층을 장아람의 사무실로 내어주고 지하 공간은 다양한 장애인 후원행사에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업은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문화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최대표는 민간주도의 영화관 아트레온을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오기도 했었다. 아트레온 극장의 성공으로 대기업이 인수 러브콜을 수차례 해왔지만 꿋꿋이 극장을 지켜왔다. 하지만 3년 전 CGV아트레온으로 변경했다.
『좋은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영화관의 운영에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한계를 느꼈다』는 최 대표는 CGV와 계약을 하면서 파트너쉽을 통한 동반성장을 제안했고, 시설의 고급화 보다는 대학가의 특징을 살려 가격을 대중화 시켜줄 것 등 몇가지 제안에 합의했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광장문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최 대표는 금싸라기땅 신촌에 아트레온을 지으면서 지상 1층과 지하 1층을 시민의 공간인 광장으로 조성했고, 연중 70%는 민간에 무료로 내어주고 있다. 결국 이런 나눔의 문화적 인식이 전국 평가 1위는 물론 일본의 록뽄기와 로리타워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문화적인 가치창조와 나눔의 신념은,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조부였던 한학자 최치훈 선생과 부친이었던 전각가이자 서예가인 우석 최규명 선생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아트레온 5층에 뮤지엄을 열고 450방의 전각을 전시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적 환원 외에도 최대표는 장아람을 지속적으로 후원하며 지난 2005년 개인 소유인 땅 2000평을 장애인 가족의 쉼터 인 꿈땅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꿈 땅은 장애아동과 가족이 쉴수 있는 공간다. 해마다 150명의 가족들이 봄과 가을에 씨뿌리고 수확하기 위해 이 곳에 온다. 또 봉사자들이 함께 농사를 지어 수확한 채소들은 장애아동 가족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보내고 있다』는 최대표.
그는 경기대학교를 정년한 후 축복을 나누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소외받는 소수계층과 약자와 함께하는 일, 가정에서 일터로, 기업으로 그리고 한 국가의 문화가 아래로부터 함께 성장하는 일, 이것이 최호준 대표가 꿈꾸는 미래의 대한민국이다.
<옥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