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쉬어가는 수필
밤에 걸려온 전화
설산스님(백련자비원·사암연합회장)
2011-09-02 15:58
작은 배려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나보다 남을 좀더 생각하는 사회를
설산스님
저는 차를 몰고 다닙니다. 스님이 차를 몬다고 하니 어색한가요?
때로는 급한 일도 있고, 먼 길을 서둘러 가야 하는데, 다른분께 실례를 하는 것도 염치가 없어 마음먹고 면허증을 땄지요. 그렇게 운전대를 잡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운전에 익숙하던 어느날의 일입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용미리에 급한 볼일이 생겨 차를 몰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용미리로 가는 연신내 사거리는 차량들로 도로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거리를 서로 빠져나가기 위해 차들이 엉켜 있었고, 하여 저마다 겨우겨우 길을 터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신호가 바뀌는데 차들은 엉켜 있으니 뒤에서는 경적 소리가 요란하고 마음이 바쁜 분들은 틈만 보이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져나갑니다. 「인간 세상 북새통」이라는 표현이 들어맞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제 차 범퍼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심하게 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차량의 정체가 조금 풀리자 손으로 뒤차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인도 쪽으로 차를 댔습니다.

밖에 나와 살펴보니 범퍼가 상당히 우그러졌더군요. 저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요. 서둘러 가야 하는 마음도 어쩔 수 없이 저를 나약하게 했습니다. 제 차를 받은 운전자는 젊은 아기 엄마로, 초보 운전 같았고, 세 식구가 교외로 놀러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차 안에서는 아기가 무서운 지 엉엉 울기만 합니다.

부부가 함께 내려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수리비는 얼마나 드리면 되겠느냐며 미안해 어쩔 줄을 모릅니다. 속은 상하지만, 그 분들의 모습을 보니 제가 안절부절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손을 내저었죠.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몇 번씩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합니다. 가족이 오붓하게 야외에 놀러가는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크게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운전석에 오르는데, 부부가 또다시 고개를 숙입니다. 여전히 미안해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날 밤, 일을 보고 사찰로 돌아왔는데, 늦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스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누구인가 싶었습니다. 알고보니 낮에 제 차의 범퍼를 받은 아기 엄마였습니다. 덕분에 가족끼리 교외에 나가 행복하게 즐기고 왔노라고 말합니다. 기회가 되면 찾아오겠노라 합니다. 그 말에는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더군요.
먼저 전화로나마 사례를 하는 것이라는데, 그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그날, 저 역시 마음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작은 배려가 이렇게 서로를 행복하게 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지더군요. 아기 엄마의 전화가 그때처럼 고맙게 여겨진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이해하고, 하여 상대를 배려하고 사레할 줄 안다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려와 표현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메마르고 각박해졌다고 말합니다. 나쁜 일만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많은 아름다운 일들이 많고, 그런 일을 볼 때마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지난 봄, 지방을 다녀오던 중의 일입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홍은동으로 향하다가 중간에 볼일이 있어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법복과 약간의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택시에 놓고 내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사 장삼까지 들어있었으니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궁리 끝에 혹시나 싶어 내렸던 자리에서 한 15분쯤 기다렸지요. 그런데 그때 택시 한 대 제 앞에 서더니 유리문이 내립니다 .그래서 타지 않는다는 표시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스님 꺼 아닌가요?』

운전 기사가 가방을 들어 보이며 묻습니다. 아까 그 기사 맞습니다. 그리고 그 가방은 분명이 제 가방입니다. 너무나 고마워 3만원을 꺼내 사례를 하려는데 받아도 되느냐고 겸손해하면서 웃으십니다. 오히려 주는 입장에서 너무 적게 드린것 같은 마음인데….
작은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는 법입니다. 강물이 모이고 모여 끝없는 바다가 되는 법입니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이 모여 큰 숲을 이루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