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기적으로 집을 떠나서 기내식을 먹고, 이국 땅의 공기를 심장에 충전시켜줘야 일상에서 활력을 찾는 사람들. KBS 김재원 아나운서가 바로 그런 여행 마니아다. 글 잘 쓰고 여행 좋아하기로 유명한 그가 이번에 라다크 여행기 <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을 출간했다. 2014년 여름 KBS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 라다크편>의 출연자가 되어 2주간 히말라야 라다크를 자전거로 체험한 이야기이다. 입춘이 막 지난 여의도에서 김재원 아나운서를 만나 라다크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하필 라다크인가?
라다크가 아닌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사실 지난 해 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너무나 우울하고 머리가 복잡했다. 방송인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픈 세상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대한 아픔과 분노로 몸과 마음이 타들어갔지만 그들의 아픔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으로 힘들었다. 그러다 교양국장 방에서 <세상을 품다> 프로그램을 보고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출연을 자원했다.
- 어떤 여정이었나?
산악자전거로 라다크의 주도(主都)인 해발 3500미터 고지 레(Leh)를 출발해서 5328미터 고봉인 타그랑 라에 오르고, 초카호수와 초모리리 호수까지 달리는 여정이었는데 무척 힘들었다. 아니, 심장이 터져 그대로 죽을 거 같은 순간도 있었다.
- 어느 순간이 가장 힘들었나?
제대로 씻지 못하고 숙식을 자급자족하는 리얼체험이다 보니 먹는 것도 많이 부실했지만 그런 건 사실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산증의 후유증으로 오는 두통과 불면증으로 매일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또 고산증 방지 때문에 먹은 다이나목스(이뇨제)의 부작용으로 밤새 소변보러 화장실 들락날락 하랴, 유목민이 환대하느라 준 요쿠르트 먹고 설사하랴. 먹고 자고 배설하는 문제가 여의치 않으니 총체적으로 힘들었다.
-3대(三代) 일곱 식구가 함께 사는 천막에서 생활하는 유목민 가정을 곁에서 보니 어땠나?
물질적으로 보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열악했지만 그들의 표정만은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두 달에 한 번씩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사는 고단한 생활일 테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잘 조직화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더 안쓰럽게 여길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50을 앞둔 나이인 만큼 그동안의 인생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매우 적절했다.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을 「상황에 순응하는 여행」이라고 이름지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50여 년의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된 것도 있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상황을 따라갔더니 또 남은 인생이 살아졌다. 어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TV 화면 속의 그는 늘 반듯하고 점잖다. 일탈이라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교양미가 넘친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사람 속을? 그는 늘 일탈을 꿈꾼다. 이미 50여 나라를 탐방했지만, 여전히 여행자의 허기를 안고 사는 그가 다음엔 어디에서 세상을 품기 위해 일탈을 감행할지 기대가 된다.
<인터뷰·정리 한국예술원 강현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