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린 딸애가 친구를 집에 데려와 놀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고, 장사 나간 엄마가 돌아오자 놀고 있던 친구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가 딸애한테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귄 친구들이니?』
그러자 딸애가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반 아이들인데, 내가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놀아 줄 친구가 없어요』
엄마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시선을 둘 데가 없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딸애의 착한 마음에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얼음장 밑으로 맑은 물이 흐릅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맑은 물처럼 조용히 가치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그렇게 맑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요. 생각해 보면 내가 세상에 베푼 것보다 세상이 나한테 베푸는 것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자원봉사 활동이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오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자원봉사는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돕기 위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도와주면 도움을 받는 쪽과 주는 쪽이 모두 풍요로워지는 것이 나눔이 덕입니다.
아름답게 사는 일은 베풀면서 사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베푸는 것도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선행을 위선으로 왜곡해서 바로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도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속담처럼 남을 도울 수 없다면 그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들 때는 차라리 이 버거운 짐을 내리고 참선과 포교에 전념하고 살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스님 잘못 만나 고생길에 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 한 분이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우스갯 소리이기는 하지만 힘들기 때문에 그런 말도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럴 때 저는 이러지요.
『간단해요. 절을 옮기고, 스님을 바꾸면 됩니다』
이렇게 저도 농담으로 받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말은 하지 못하고 속으로 용서를 빌기도 합니다.
『제가 못나 그럽니다. 보살님』
저는 처음 봉사 단체를 만들 때 부처님께 약속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한 가지 제대로 죽겠노라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많은 분들을 힘들게 하는 이 못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지요. 이진리 깨닫기 위해 묵묵히 제 일을 할 따름입니다.
쉬어가는 수필
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
설산스님
2011-08-09 18:07
세상 각박해도 맑은 물처럼 가치있게 사는 이 많아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설산스님 (백련자비원·사암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