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 메마른 시대에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제가 아는 한 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만들었기에 그분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한참동안 웃은 일도 있었습니다.
한 시대의 거물이라도 역사가 바뀌면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역사도 바뀌고 이론도 바뀌지만 진리란 바뀌지 않는 법이지요. 또한 우리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흐르는 정서 역시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은 그와같은 분이요, 인류의 정서 속에서 한결같이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 분은 테레사 수녀이십니다. 스님이 수녀를 존경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 분의 자비로움과 사랑이 저를 감동하게 하고, 더구나 그 분이 걸어온 생이 제가 나아갈 길이라면 그 분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으니까요.
1981년, 테레사 수녀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분을 가까이에서 만나뵙고 감회에 벅차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습니다. 세계를 밝히는 정신적 지도자를 직접 눈앞에서 만나는 영광도 인연이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의 고매한 인품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꼈지만, 그보다 부끄러움이 앞서기만 했습니다. 저 또한 수행자의 길을 걷는 터에, 그 분과 비교하면 제가 한 일은 눈곱의 때만큼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지요. 테레사 수녀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마디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여겨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몸은 너무나 부유해 보이더군요.
테레사 수녀가 돌아간 뒤에 제 마음은 편하지 못했지요. 출가 수행자로서 깨달음을 위해 걸어왔을 뿐, 제 삶 속에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의 깨달음이란 부끄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더욱이 한창 젊은 제가, 사지육신이 멀쩡한 제가 내 한 몸의 깨달음만 얻고자 하는 것도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를 만나기 전에도 물론 남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요.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기여하자. 헐벗고 굶주리고 지친 이웃을 위해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자」
그런 마음만 있을 뿐 정작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잡다가도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만 무성했을 뿐이지요. 그런 무성의와 나태함도 숨길 수 없는 제 부끄러운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그 분을 만나면서 새로워졌고, 그것은 갈수록 간절해 졌습니다.
「진정 내가 출가 수행한 승려라면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나서자」
제 마음에 씨앗을 뿌린 것이지요.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 불교 사회 봉사회가 탄생하고, 무료합동결혼식과 천불 장학회로 이어졌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인류의 존엄성을 빛낸 이 시대의 진정한 성녀로 가난한 이들에게는 사랑의 표상이었습니다. 그 분의 용기는 꺼져가는 우리들의 삶을 충분히 지켜 주었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존엄성을 빛내주며, 자신을 인류에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 분은 사랑을 실천한 자비의 화신이었을 뿐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준 보살이었지요.
그런 테레사 수녀가 1997년 9월 6일 새벽 1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녀의 마지막 길에 세계가 함께 울었습니다. 인류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한 사람을 잃은 슬픔이었습니다. 인도 캘커타 시내의 네타지 경기장에서 거행된 영결미사에는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6000명의 조문객이 들어찼습니다.
마지막 장례 행렬에는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돌본 장애인, 나환자, 고아, 부랑자, 걸인들이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5000킬로미터의 줄을 지었습니다. 장례식에 모인 150여 만명이 테레사 수녀의 거룩한 인생을 되새겼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하신 말씀들 중에서 특히 감명을 안겨준 몇 구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 다만 줄 따름입니다. 아플때까지 주십시오」
「기도하면 믿게 될 것입니다. 믿으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섬기게 될 것입니다」
「쌓아두면 쌓아 둘수록 줄 수 있는 것이 적어집니다. 가진 것이 적을 수록 나누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지요」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나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지는 못합니다.
쉬어가는 수필
테레사 수녀를 만나다
설산스님
2011-08-09 18:00
인류에 온전한 삶을 바친 사랑과 자비의 화신
설산스님 (백련자비원·사엄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