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정당의 설립을 자유롭게 허용하되(제8조 제1항) 그 요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정당조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비를 납부하는 각계각층의 당원이 있어야 하고, 당원들의 의사에 의해 당의 일선조직, 기간조직, 중앙당의 간부 및 당 대표까지도 구성돼야 한다는 의미다. 또 정당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정당의 정책 및 당론 결정, 강령채택에 이르기까지 당원의 의사에 따라 상향적으로 결정하고, 모든 선거에서 정당후보를 당원투표에 의해 상향적으로 지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헌법규정에 부합하는 민주적 공천을 하려면 정당에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층이 두터워야 하고, 당내 민주화가 제도화 돼 있어야 한다.
서유럽제국의 정당들이 그 모델로 전국 변호사 교수 교사 의사 약사 기업인 소상공인 문화예술계인사 자유업 종사자 근로자 등 각층의 당원들이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지역별 당원대회에서 국회의원과 지방선거후보를 투표로 선정한다. 후보자는 공천신청서와 이력서를 지방당에 제출하고 면접을 거친 후 신청자 둥 의원정수의 3배수를 후보로 선발해 지방당원대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준다. 당원 비밀 투표로 그 자리에서 공천자를 확정한다. 이에비해 한국은 각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을 제외하고는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와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의원 후보 결정에 지역당원의 의사 참여는 배제돼 있다. 당원들은 정당의 당론과 후보결정에 아무 영향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진성당원 없고, 당내민주화 안돼 있는 정당공천제 무의미
올해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천파동을 겪었다. 서울 동작을 공천신청자를 수원으로, 광주 광산을 신청자를 연고도 없는 서울 동작을로 각각 옮기고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광산을에 전략 공천했다. 정당민주주의의 요체인 당원과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자 당내에서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지도부가 사퇴했다.
각 당은 지방선거 후보공천을 위해 시도공천심사위원회를 두지만 명목일 뿐 각 지역구국회의원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후보로 결정한다. 당원들은 구경꾼이자 들러리일 뿐이다. 이런 정당에 어느 국민이 당비를 내는 풀뿌리 당원이 되려고 하겠는가? 이제는 당원협의회가 후보공천신청을 받아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려 해도 투표할 당원이 없다. 당내 민주화도 안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공천을 강행한 결과 시도지사 후보는 중앙당 계파의 수장과 실세들이 나눠먹기식으로 공천하고,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는 당원협의회 위원장(대체로 국회의원)이 공천하는 실정으로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4월 민주당 18대 대선평가위원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성찰>이라는 대선평가보고서를 통해 『계파주의는 공천이나 당직인사에서 계파 나눠먹기를 뜻하며 계파 이기주의와 계파 패권주의, 계파 배타주의는 당 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독과점을 지탄하는 용어이며, 특정계파는 후보 고수와 당권 유지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평가했다. 계파정치는 대선패배의 큰 원인으로 민주당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초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에 대한 비민주적, 하향식 공천의 폐해
첫째,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방선거후보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주민을 위한 자치는 퇴색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위한 자치로 변질됐다. 국회의원은 지방의회를 장악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행정처분, 공사입찰과 공무원인사, 지방의회의 원구성, 안건심의 의결까지 깊이 관여한다. 지방의회 회기 중이라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부르면 지방의원은 바로 달려가야 하고, 국회의원이 개최하는 행사에는 자비로 주민을 동원해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 대선때는 정치자금을 바쳐야 했고, 지역선거책임자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
둘째, 정당공천 대가로 막대한 뒷돈거래가 이뤄졌고, 금품수수의 비리를 저질러 사법처리된 기초단체장 중에는 공천헌금을 조달하거나 다음선거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자체장의 72.9%, 지방의원의 88.2%가 정당공천을 부패유발의 원인으로 본다는 한 여론조사결과가 이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셋째, 지역일꾼을 뽑는 잔치로 치러지지 못하고 중앙정치의 축소판, 정당간 각축장으로 변모한 지방선거가 되고 있다. 민생법안이 산적해 잇지만 여야 중진들은 선거때면 현장에 떼를 지어 다니며 세몰이를 한다. 지방자치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판도가 달라질 것처럼 정국주도권을 잡겠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지방선거가 과열되고 고비용선거가 되는 이유도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때문이다.
넷째, 정당공천제는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의 지방정치무대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출중한 인재는 국회의원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해 후보 공천에서 탈락시켜 인재를 발굴해 중앙정치무대로 진출시키다는 정당공천제 찬성론은 한국상황에는 맞지 않다.
다섯째, 기초의회의 핵심인 자율권과 심의 의결기능을 저해한다. 기초의회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의장단과 상임위위원장을 뽑아햐 하고 중요 심의 안건을 처리하는 경향이 보편화 됐다. 기초단체장과 의회의석 과반수가 동일한 정당 소속인 지역은 기초의원이 의회에서 단체장의 실정을 추궁하지 못하고 반대로 다른 정당 소속이 많은 곳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왜곡된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와 그 단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정당 민주주의란 국민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차기 총선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자고 여야에 제안했다. 미국에서 도입중인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예비선거, 완전 국민경선제)란 정당이 선거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에 참가자격을 소속 정당원으로 제한하지 않고 일반 유권자에게도 개방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문제점이 있다.
첫째, 당의 후보경선을 국민에게 개방하면 정당의 근간인 당원의 존재이유가 없어질 수 있다. 특히 당원의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각 당의 기존 지도부와 기득권층이 당내 공천권을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다.
셋째,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과연 관심을 촉발시키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투명공천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미국에서도 비민주적 요소가 드러나고 있다. 23개 주에서는 채택하지 않고 있다.
넷째, 인지도가 높은 의원들과 현역 의원들이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다섯째, 유능한 정치신인이 현역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역 의원이 위원장을 맡는 당원협의회 제도를 폐지하는 등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없애야 한다.
여섯째, 자칫 극단적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
일곱째, 선거인단 규모가 작을 경우 동원되는 유권자의 영향력이 결정적이고 다수당에게 지나치게 유리할 것이다.
여덟째, 상대 정당이 약한 후보를 공천하도록 작용해 자기 정당이 본선에서 유리하도록 악용할 소지가 있어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여성, 장애인 진출위해 선거구제 조정 도입을
기초자치단체선거 정당공천제대 대한 강력한 비판여론과 폐지론이 비등한지 오래다. 주민참여경선은 구호에 그쳤고, 지역구 국회의원에 의한 후보결정은 오늘까지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주요후보들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으나 여야합의로 설치된 국회 정치쇄신 특별위원회는 정당공천 폐지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사실상 해산했다. 그 후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약속이 파기됐다.
기초지방자치는 주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생활자치로 정치와 분리돼야 하며, 지방자치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공천을 배제해야 한다. 또 기초자치선거가 정치인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보호막을 설치해야 한다. 여성과 장애인들의 정치참여 위축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른다는 주장도 있으나 여성전용선거구제, 여성만이 출마할 수 있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이 지방정계에 진출할 수 있게될 것이다.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미국 지방정부수는 80% 이상에 달하며 일본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허용하고 있으나 무소속 후보 당선비율이 90%를 넘는다. 각종 여런조사에서 국민의 70%이상이 찬성하는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것은 새정치를 바라는 민의를 거스르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