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쉬어가는 수필
자리 바꾸어 앉을까요?
설산스님
2011-08-01 15:22
한순간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잊어서는 안된다는 진리 담겨 있어
설산스님 (백련자비원·사엄연합회장)
제가 아는 한 보살님은 자신이 상대에게 배려하지 못한 일로 평생이 한을 안게 됐다고 합니다. 지금 그는 걸음도 걷지 못한 채 누워지내고 있으니 평생이 한이 될 법도 합니다.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지난 1980년대 초, 당시 그분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습니다.
하루는 업무를 일찍 끝내고 퇴근하는 중이었습니다. 오후 4시쯤 퇴근길에 오른 그 분은 늘 그렇듯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는 퇴근 시간 훨씬 전이어서 한산했습니다. 좌석이 많이 비었고, 그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뒷좌석에 앉았지요. 그 자리에 앉으면 시아가 넓게 들어오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앞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뒷자석의 오른쪽 창가에 앉은 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었습니다.

서울역을 지나면서 정류장마다 한두 사람씩 오르더니 용산에 이를 때쯤에는 거의 빈 좌석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용산을 출발해 노량진 방향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그 분 앞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자리를 좀 바꾸어 앉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그분은 모처럼 회사 일을 일찍 끝내고 뒷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한가한 마음을 즐기는 중이었는데 그런 제의를 했으니 불쾌했을 테지요.
『그냥 가시죠, 이 자리가 좋은 걸요』

그분의 거절에 아가씨는 무안한 표정이었습니다. 한 정거장쯤 지나 아가씨가 다시 그분에게 자리를 바꾸어 앉을 수 없겠느냐고 간청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속이 답답해서 그래요, 토할것만 같은데 창문이 열리지 않아서요』
두 번의 요청에도 그는 시큰둥한 표정만 보냈지요. 자리를 바꾸어 앉는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죠. 하지만 그분은 그럴마음이 서지 않았고, 그래서 아가씨의 처지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분이 얼굴을 찌푸리자 아가씨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지요.

그런데 그때 그분과 같은 뒷좌석의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괜찮으시면 제 자리에 앉으세요. 창문도 이렇게 열려 있어서 괜찮을 거에요』
청년의 제의에 아가씨는 고맙다며 인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 앉았지. 그 분은 자신이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에 서둘러 눈을 감은 채 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청년과 아가씨가 자리를 바꾸어 앉은 지 채 1분이 되지 않았을때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버스는 한강대교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열린 창가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시원한 강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보살님을 정신을 읽고 말았습니다. 그분은 한참만에 눈을 떴고 주위를 살펴보니 중환자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실에는 그 아가씨도 보였습니다. 아가씨 말이, 우리가 탄 버스가 과속을 하다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켜 앞차를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버스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쳤고, 이렇게 병실에 누워있는 거랍니다.

아가씨의 부상은 그분에 비해 경미했습니다.
『그 청년은 어떻게 되었나요?』
버스 안에서의 무안한 기억때문에 그 청년은 어떤지 물어보았는데, 천만다행으로 괜찮답니다.
그러나 자리를 바꿔주지 않은 보살님은 척추를 크게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고, 아가씨는 대퇴부가 골절돼 깁스를 한상태로 한 병실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한병실에서 아가씨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부끄러워서였지요. 아가씨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애써 외면할 정도였으니까요.
사고가 난 지 일주일 후, 젊은 부부가 그 병실에 찾아왔고, 그 아가씨에게 다가가더군요. 그런데 이런! 그 부부중 남편되는 사람은 바로 아가씨와 자리를 바꿔앉은 그 청년입니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결혼식을 올렸거든요. 지금 방금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청년이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고, 옆에 서 있는 신부가 아가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너무 죄송해요 우리 신랑이 자리를 바꾸어 앉아 아가씨가 다쳤네요. 아무쪼록 빨리 일어나시길 바랄게요』

보살님은 옆 침대에 누워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을 찍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때, 잠시 양보했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텐데…』
결혼을 앞둔 청년은 작은 선행으로 무사할 수 있었고, 중대한 결혼도 탈 없이 치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한순간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