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에 소재하고 있는 경운궁 중명전에서부터 경교장을 거쳐 4·19혁명 역사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까지 약2㎞에 이르는 「독립, 민주 올레길」 탐방이 지난 7일 진행됐다.
문석진 구청장을 비롯해 한국청년연합회, 역사관관계자, 서대문문화원 임원 등이 내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독립, 민주 올레길 탐방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재개관 기념행사 일환으로 진행돼 그 뜻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이날 각 민주유적지에 대한 역사적 해설을 담당, 경운궁 중명전, 경교장, 4·19혁명 역사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독립민주 운동사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쉽게 설명해 주민들의 이해를 도왔다.
문 구청장은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발행, 중국의 한글 공정 등 국제적 역사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국민의 역사의식이 한층 더 성장하고,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선열의 뜻을 받들어 나라사랑의 참뜻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 경운궁 중명전(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
중구에 위치한 중명전은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의 부속 건물로,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돼 대한제국의 운명을 가른 현장이다.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제는 그들 내각에서 「한국의 보호국화」를 결의하고,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07.29), 제2차 영일동맹(1905.08.12), 포츠머스 강화조약(1905.09.05)을 체결해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소위 「우월적 지도 보호」를 묵인 받은 곳이다.
● 경교장(국가사적 제465호)
강북삼성병원 내 위치한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금광을 경영했던 최창학이 1938년 지은 고급 주택으로, 해방 이후 김구선생이 거처하면서 집무를 보고, 임시정부 요인들이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또한 김구 선생이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게 저격당해 돌아가신 현장이기도 하다.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자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되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이라 하였으나 김구 선생이 근처에 흐르던 만초천 위의 다리 이름이었던 「경교(京橋)」를 따 이름을 경교장이라 하였고, 당시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 불렸다. 경교장은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의 서거 때까지 김구 선생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집무실로 이용되면서 국내 유일의 임시정부청사로 사영됐었다. 또한 한국독립당 활동, 반탁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 4·19혁명 기념도서관(공공도서관)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4·19혁명 기념도서관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해 학생들의 반부정·반정부 항쟁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도서관이다. 1960년 이기붕의 소유재산이 국가에 환수 되면서 그 건물을 무상으로 대여 받아 「4·19기념 사설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이후 1990년대 현대식 도서관 건립을 추진해 2000년 「4·19혁명 기념도서관」으로 재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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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