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은 안중근의사 의거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안중근 의사는 7발의 총탄으로 이 땅의 침략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역사적 심판을 내렸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윤택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배와 가슴에 북두칠성 모양의 7개의 흑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고 해서 아명을 「응칠」이라 하였으며, 독립운동 당시 이 아명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부친의 영향으로 천주교 교리를 습득하여 집안 전체가 천주교 교인이 되었으며 안중근 의사도 돈독한 신앙심으로 전교활동 등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안중근의 의거는 일본의 세력 확장으로 실망에 빠져 있는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들은 의거의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몇 백 년 동안 변방의 작은 나라로만 여겨왔던 한국에 안중근 같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던 것이다. 안중근의 의거를 통해 일본을 한국과 중국의 공통된 적대국으로 인식시킬 수 있음은 물론, 중국 내에 있는 한국인들이 정당하게 평가되고 대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올해는 특히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이자 의거 101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의거 101주년이 되는 10월 26일에 맞춰 새로 지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안중근의사께서 옥중에서 저술하신 ‘동양평화론’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품은 큰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현재의 유럽연합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밑그림을 100여년 전에 그리신 안의사의 비전과 안목은 놀라울 정도이다. 따라서 안중근의사기념관 재개관을 통하여 안중근의사의 높고 큰 이상을 더욱더 발전시켜나가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안중근의사 의거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침략의 원흉 처단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안의사님의 정신과 큰 뜻이 우리 대한민국에, 나아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꽃피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이제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기고
안중근의사 의거 101주년을 맞아
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인사서무팀장
2010-11-08 14:31
북두칠성 기운받고 태어났다해 아명 ‘응칠’로 불려
101주년 맞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
101주년 맞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
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인사서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