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전시워크숍으로써 재개발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게 될 북아현동의 현재를 느끼는 동시에, 지나온 북아현동의 추억을 담고자 하는 의미에서 기획된 「아현동프로젝트」가 60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북아현동에서 나고 자라 각별한 애정으로 전시와 워크숍을 기획했던 아트스페이스의 서희 대표는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매년 기획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서 씨는 『재개발 사업과 이로인해 사라져가는 지역적 특성과 이야기들을 전시기획자와 건축관계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며 『편리와 경재개발논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출발과 함께 아쉽게 사리지는 지역의 흔적을 기록하고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던 아현동프로젝트의 전시과정과 결과물을 함께 감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 프로젝트를 재해석하는 전시세미나 「건축과 미술, 북아현동프로젝트를 재해석하다」와 작가연구 「북아현동과 작가, 그들의 삶과 예술」 등 세미나가 전시 마지막날 서대문문화회관(관장 김영욱) 소강당에서 있었다.
△ 북아현동프로젝트를 재해석하다 △지역발전과 재개발건축에 관한 고찰 △북아현동과 작가들,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 등 총 3가지 주제를 가지고 3시간 가량 진행한 이 날 세미나는 서희 아트스페이스 대표와 박호균 기획자, 강비조 건축 컨설턴트, 서울시립미술관 정창미 도슨트가 참석했다.
특히 북아현동에 살아 숨셨던 작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짚어보는 시간에서는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를 조명하기도 했다.
북아현동 작업실에서 열정적인 예술혼을 불태웠던 천경자 화백의 삶을 시작으로 이인성, 손상기 등 한국근대미술의 큰 획을 그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정창미 도슨트는 『아현동은 예전부터 미술로 유명한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와 가깝고, 대학로 등 시내와도 가까우면서 저렴한 주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동네였다』며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가을 어느날」, 「경주의 산곡에서」와 같은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근대 서양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인성은 6.25이전 대구에서 상경하여 당시 이화여중의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서울 북아현동에 삶의 터를 잡았다. 그리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할 때까지 아현동에서 살았다.
또 한국의 대표적 여류화가이며, 수필가인 작가 천경자는 6.25 이후, 홍익대학교의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71년 신촌에 「천경자 미술 연구소」를 설립했다. 작가는 20여년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이 일대에서 생활하고 작업해 왔다. 현존 작가이며, 1998년 서울 시립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93점을 기증하고, 거주지를 미국으로 옮겼다.
2008년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에 열리기도 했던 화가 손상기 씨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아현동에서 살았고, 작품의 소재 역시 아현동에서 얻었다.
특히 그의 「공작도시」 시리즈는 북아현동에서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처음 전라도 여수에서 상경하여 북아현동에서 자그만 화실을 차리며,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손상기는 1980년대 초 당시 아현동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어려서 구루병을 앓아, 척추가 휘어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간 화가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했던 초기 작품 「시들지 않는 꽃」, 「자라지 않는 나무」에 이어 아현동 뿐만 아니라 서울의 소시민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도시 삶의 모습을 담은 「공작도시」시리즈로 점차 화단에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작가 손상기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자신의 더 많은 작품세계를 펼치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30일 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세미나 외에도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염효란 작가의 「아현동 얼굴」을 시작으로 이정미, 홍순미 작가의 「아현동행 열차를 타세요」 등 작가와 관객이 하나 되어 작품을 완성하는 전시체험 워크숍이 있었다.
「아현동 얼굴은」 관객들의 얼굴을 석고가면으로 제작해 참여한 관객들에게 추억을 선사했다.
<강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