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탐방
서대문구 6.25참전유공자회, 서대문구월남참전유공자전우회
sdmnews
2006-05-02 19:00
우리 구, 2300여 참전 유공자 거주 미미한 제도적 지원과 인식 안타까워
참전유공자회가 참여하는 자연보호, 방범순찰 등 캠페인 장면
좌측이 배선규 우측이 이동식 회장

젊은세대에게 6·25전쟁과 월남전쟁은 희미한 역사의 페이지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몸과 마음에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끌어 안은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서대문구에만도 2300여 참전 유공자들이 둥지를 틀고있다. 조국을 위해 최전선에 서 온몸을 던졌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서대문구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이동식)와 월남참전유공자전우회(회장 배선규) 회원들은 한 세대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진한 공감대를 이룬다. 월남참전유공자전우회 배선규 회장은 『6·25참전 유공자가 할아버지 세대라면, 월남참전유공자들은 아버지 세대라고 볼 수 있다』며 『특히 6·25참전 유공자는 이미 70대 후반에서 80대의 연령대로, 남아계신 분들이 많지 않아 이분들에 대한 예우가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실제, 나라를 위해 젊음을 볼모로 최전선에 나섰다가 시들어버린 이들에 대한 지원책은 미미하기만 하다. 만 65세 이상의 참전유공자에 대해 매달 6~7만원의 지원금을 보조하는 것 이외에는 정부차원의 어떤 제도적 지원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구가 단체에 연 1회 지원하는 금액도 300만원이 전부다. 배 회장은 『심지어 마땅한 사무실조차 마련할 여력이 되지 않아, 재향군인회 사무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토록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국가에서 지정한 유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상이군경과 달리 전쟁에서 부상이나 가시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은 물질적 지원에 앞서, 참전 전우들에 대한 인식과 예우 문제다. 월남참전전우회 이동식 회장은 『참전전우들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는 커녕, 구청 신년하례식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도 체육회나 통장단 소개까지는 이루어지면서도 정작 우리 단체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며 지자체 지도자들의 외면에 씁쓸해했다.

참전군인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마찬가지라는데. 월남참전전우회의 한 회원은 『부모가 월남전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파악해서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나라를 위해 싸운 전우들에 대한 예우가 없다면 누가 전쟁에 제대로 임하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처지가 낡은 역사의 귀퉁이로 전락해버렸다고 한탄하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나라사랑의 끈은 놓지 못한다.

매년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서도 군복을 차려입고 자연보호, 방범순찰, 산불예방, 학원폭력 예방캠페인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위해 찬란한 젊음을 내놓은 유공자들의 나라사랑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이제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Interview/ 배선규·이동식 회장
“참전 유공자 진정한 의미 되새겨야”
캠페인 비롯한 지역사회 봉사 실천


이제 낡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버린 6·25전쟁과 월남전의 복판에 서 있었던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이동식)와 월남참전유공자전우회(회장 배선규)를 찾았다. 이들은, 나라를 위해 젊음을 내놓은 대가로 돌아온 것은 사회와 제도적인 무관심이라고 토로한다. <편집자주>

□ 서대문구 6·25참전유공자회와 월남참전유공자전우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 1950년 발발한 6·25전쟁과 우리나라가 1964년 파견한 월남전에 각각 참여한 참전용사들의 모임이다. 현재 6·25참전 전우회에 1300여 회원이, 월남참전 전우회에 10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 할아버지의 세대, 후자의 경우 아버지 세대라고 볼 수 있다.

□ 회원들의 고충이 있다면?
■ 6·25참전 유공자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고, 월남참전 유공자들은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바쳐 싸워 조국과 사회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도 매우 안타깝다. 특히 타 지자체의 경우 참전유공자전우회의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재향군인회의 사무실 한켠에 더부살이를 하고있는 실정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봉사를 하고있는 것으로 아는데?
■ 주민들의 본이 되기위해 군복을 입고 자연보호, 산불예방, 학원폭력 예방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다. 또 안산과 북한산을 청소하기도 하고, 정기적인 방범순찰을 진행하고 있다.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참전 유공자들에 대한 인식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참전 유공자들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지 않고 도외시 한다면, 앞으로는 나라를 위해 선뜻 목숨을 걸고 맞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국가의 경제가 성장한 이 시점에서라도, 참전 유공자들의 공로를 한번쯤 진지하게 되돌아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