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BWC(Beautiful World Cambodia) 아동센터의 아이들.
비록 어려운 여건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부자였던 아이들을
통해 청소년해외자원봉사단은 「행복」의 의미를 배웠다.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에서 점점 「가난하고 굶주린 나라 캄보디아」는 사라지고, 마음까지 훈훈해짐을 느꼈다. 서대문사람들 신문에서는 3회에 걸쳐 청소년해외자원봉사단의 캄보디아 봉사기를 게재함으로써 봉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 가슴 뜨거웠던 봉사현장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아울러 물과, 음식, 약품 모든 것이 부족한 현지아이들을 위한 후원의 손길도 기다린다.
이번 호는 그 첫 순서로 「꿈과 희망을 전하다」편으로 청소년해외자원봉사단의 활동
내용과 캄보디아 현지의 실정을 싣는다.
<편집자주>
『맑고 깨끗한 현지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더 해주고 싶지만 혼자서는 다 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 국제사회 구호가를 꿈꾸는 김하은(18) 봉사대원)』
<-캄보디아 현재 공법으로 지어진 ‘행복 그늘’
행복 나눔과 사랑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지난달 16일부터 10박 11일간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 지역의 「BWC(Beautiful World Cambodia) 아동센터(원장 성보스님)」로 해외자원봉사활동을 떠난 22명의 봉사단이 현지 아이들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배우고 지난달 26일 고국 땅을 밟았다.
(사)한국청소년재단(이사장 김병후)이 시립 서대문청소년수련관(관장 황인국)에 위탁해 캄보디아와 장기적인 봉사 및 후원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자원봉사에는 황인국 관장, 수련관 담당자 3명을 포함한 「꿈과 사랑 속으로 제1기 청소년해외자원봉사단」 22명이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 BWC아동센터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왔다.
물질적인 기부보다 더 소중한 땀이 의미를 찾기 위해 봉사를 강행한 청소년 대원 18명에게는 캄보디아가 더이상 「가난하고 굶주린 나라」가 아닌 「정 많고, 진정한 행복을 알게 해준 나라」로 각인됐다. 해마다 지속적인 연계를 통해 봉사를 이어가게 될 캄보디아 씨엠립 현장의 뜨거웠던 11일간을 취재했다.
★ 씨엠립 BWC아동센터를 가다.
비행기로 5시간이 넘게 날아서야 도착한 씨엠립 국제공항.
이 곳에 첫 발을 내딛은 시간은 밤 10시였지만 「훅∼」 하고 불어오는 뜨거운 공기는 한증막의 열기를 떠오르게 했다. 온도계 수은주는 35℃.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으로 불릴만한 더위지만 캄보디아는 지금 겨울이다.
찬수와 친했던 팔렌 ->
두 차례의 합숙을 통해 어느정도 친해질만도 하지만 아직은 서로가 머쓱했던 봉사대원들은 미리 마중 나온 기관 관계자와 함께 버스로 BWC 아동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씨엠립 전 지역에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밤 9시면 거의 마을전체에 전기가 끊겨 「칠흙같은 어둠」을 실감케한다. 하지만 밤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평생 잊지말라며 어둠을 비춘다.
서먹한 첫날이 지나고 어색함 마저 느낄 사이 없이 둘째날 강행군이 시작된다. 새벽 5시 기상한 봉사대원들은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겨울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건기임에도 한 낮의 온도가 40℃까지 올라가 동이 트는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지는 7시 30분까지 현지아이들의 생활패턴에 맞춰 봉사대원들도 희망 그늘 만들기, 꿈 벽화그리기, 텃밭 가꾸기 등 현지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봉사 활동을 펼친다.
★ 현지일상 이야기
BWC 아동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70여명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부모를 잃거나 부모와 살 수 없는 아이들이다. 중학생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등학교 내지는 미취학 아동들이다. 모두 어린 나이이지만 동이 틀 무렵인 새벽 5시에 눈을 뜬 아이들은 씻고 밖으로 나와 각자 맡은 구역의 가로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청소를 시작한다.
<-현재 교사 모포우에게서 밭갈기 작업설명을 듣고 있는 봉사대원들.
한 방에 적게는 4~5명, 많게는 7명의 현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기숙사에는 각 방마다 보모가 있고,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서 방을 청소하는 아이, 화단에 물을 주는 아이, 길을 청소하는 아이 등 업무분장이 확실해 보였다.
아침 청소가 끝나면 6시부터 아침식사 시간이다. 학교가 많지 않아 저학년은 오전에, 고학년은 오후에 등교를 하기 때문에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아침먹는 손길이 분주하다.
11시쯤 하교한 아이들은 12시 무렵 점심을 먹고, 2시까지 오침을 한다. 워낙 더운 날씨라 아직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활동자체가 무리여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침은 필수다.
등교한 고학년 아이들 이외에 오침을 마친 아이들은 다시 봉사단원들과 함께 벽화그리기, 텃밭 가꾸기 등 여러 활동을 함께 한 후 5시 반쯤부터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 개인 활동, 자율학습, 신체단련 활동 등을 하고, 저녁 9시에는 모두 취침에 들어간다.
★ 꿈, 희망을 전하다
18명의 봉사대원들은 더운 날씨에 뜨거운 태양을 잠시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정자 그늘 만들기,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조그만 텃밭 만들기, 현지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벽화그리기 등 세가지 활동을 분담해 봉사를 진행했다.
꿈 벽화그리기는 아동센터를 아우르고 있는 담벼락 중 두 단에 동화 속의 동물왕국을 그려 넣어 현지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
현재 교사 모포우에게서 밭갈기 작업설명을 듣고 있는 봉사대원들.->
밑그림에서부터 채색까지 완성해야 하는 벽화그리기는 그늘 한점 없는 태양아래에서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 쌍꺼풀이 유난히 짙은 현지의 한 아이가 우산을 가져와 그늘을 만들어 주며 봉사대 언니 오빠들을 응원한다. 아이들은 동화속 그림이 그려진 벽화를 보며 미래의 꿈을 키워나갈 것이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더위 속에서 진행된 텃밭 만들기 또한 남자대원들의 땀방울로 만들어 낸 값진 작품이었다.
삽과 곡괭이를 처음 만져보는 대원들이 많아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맏형 이준현 대원과 학군단의 최재형 대원은 듬직하게 후배를 이끈다. 중·고등학교 남자대원의 구슬땀은 어느덧 4개의 밭이랑을 완성했다. 현지 교사인 모포우 교사에게 작업지시를 받아 이랑을 만들고, 몇몇 여자대원들이 이랑 속에 나팔꽃과 현지 채소의 씨를 뿌려 완성한 텃밭에선 여름이 되면 조롱조롱 열매를 맺은 채소들이 아이들의 식탁위에 오를 것이다.
캄보디아 공법에 맞게 큰 틀을 만들고 기와 플레이트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세워진 「꿈과 사랑 속으로 청소년해외자원봉사단의 희망그늘」작업은 현지인들이 정자그늘을 만드는 동안 봉사대원들은 우기에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주변에 배수로를 만드는 등 잡일을 도와주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정자와 함께 인근에 잎이 넓게 퍼지는 나무가 심어져 내년이면 시원한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한국에서 온 1기 해외자원봉사대원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정이 많은 아이들. 미소 뒤 상처를 보듬다.
BWC 아동센터 아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학교를 갈 수 있다는 행복, 운동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고, 두 손을 모아(캄보디아 인사법)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에서 「정이 많은 아이들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아동센터에 모여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다.
캄보디아의 많은 아이들은 부모도 없이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하거나, 매춘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국가 경제가 어렵다보니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BWC아동센터의 경우는 미력하나마 그들의 수를 줄이고, 캄보디아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 공부도 시키고, 인성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그래서 인지 아동센터 아이들은 밝고 웃음을 가졌고, 붙임성도 좋다.
아동센터에 처음 입소하면서 관계자들이 당부한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마라」였다. 아이들과 친해져 어울리는 것은 좋으나 사소한 정에 이끌려 다시 오겠다든지, 연락을 하겠다든지 하는 약속 등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번 봉사활동을 왔다가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여전히 다시 오겠다던 그들과의 약속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봉사대원들이 떠나던 날 많은 현지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다음을 약속하려 했으나 아무런 기약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었던 봉사대원들도 많은 눈물을 흘리며 발길을 돌렸다.
<다음호에 계속>
글·사진 신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