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342(2009)년 1월 1일 날씨 차고 맑음
묵은해(武子年)을 보내면서 새해(己丑)을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밤 기원제, 지난 밤 11시 30분부터 호박골 대종교 본궁에서 많은 교우들이 모여 선도사(宣道使, 필자)의 원도(願禱)를 필두로 식이 진행됐다.
해가 바뀌는 자정(子正)이 가까워지자 분초(分秒)를 다투는 절박한 카운트가 시작됐다. 숙연한 정적(靜寂)이 가슴을 조이며 대자연(우주)의 섭리 속에 영접(永接)의 한(해) 고비를 넘기는 찰라(刹那)이어라. 드디어 자정의 고동이 가슴에 쿵 하고 와닿는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던 북채가 하늘 높이 천고(하늘북, 영고迎鼓)를 천지인(天地人)의 화성수(化成數)에 따라 36번을 울렸다. 내 손아귀에는 땀을 쥐었다.
새해 새벽을 맞이하는 장엄한 북소리가 호박골 약수터 골짜기를 타고 산울림이 되어 홍은·홍제동 일원에 울려퍼지며 홍제천에 담긴 초생달에 실려서 흘렀다. 그 북소리로 하여금 새해 소망을 한울에 축원하였다. 올해의 상징인 우공(牛公, 소)을 거울삼아 어떠한 고난일지라도 감내(堪耐)하며 꾸준히 근면(勤勉)하겠사오니 오늘의 국난(國難)을 극복하고 화합과 안정을 되찾게 하소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홍익인간 이념 하에 통일의 서광을 주시고 일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현시의 지구촌에 한울의 뜻(天意)에 어긋나는 살육의 전쟁을 거두어 주시옵기를 거듭 고유(告由)하나이다.
새해에 되돌아보는 좌우명(左右銘)
새해를 가늠하는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없을 수 없다.
해마다 연초에 계획한 일에 최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다. 항상 내 마음에 속아왔다. 그래도 매년 같은 다짐을 반복하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았다.
「일기 쓰기와 글 쓰고 다듬기」
일제말기(日帝末期, 1943년 경)의 이른 봄 안산 기슭의 능안골(북아현동)산 밑에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선생이 거처하시던 조촐한 서옥(書屋)이 있었다. 어른들의 심부름꾼으로 가끔 드나들었었는데 하루는 민세 선생님 말씀이 『네가 문학을 선호(選好)한다는데 내가 문학박사이므로 한마디 일러주마. 문학을 하려면 첫째 역사공부부터 시작하면서 둘째로 철학을 배우고, 셋째는 다독(多讀), 넷째로 다작(多作)이다. 동서양 고전을 모두 편렵하면서 글을 쉬지 않고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이 네 가지를 문학지남(文學指南,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조선역사(朝鮮歷史)도 공부해야 한다. 요즘 조선역사 책을 구하기가 힘들다마는 육당(六當 崔南善)이 지은 고사통(故事通)을 구해보는 것이 좋겠다.』
조선역사라 이름 붙일 수가 없어서 고사통이라 한 것이다.
『예! 그 책은 저희 집에 있습니다. 아버님이 구해오셔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겠다! 참 고맙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그때 내 나이 15살인가 보다. 그 말씀대로 이루지는 못했지만 항상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왔다.
무상한 세월이여! 내 나이 어언 80 고개를 바라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