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장을 맡게 되자 집사람으로부터 첫 반응이 나왔다. 「가족부터 소통합시다!」
그 후 곤혹스러웠던 것이 기자들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쇄도했다. 소통위원장이 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냐고. 사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기자들과 접촉을 않고 있던 터였다. 그 후로 어쩔 수 없이 소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은 특히 소통이 큰 화두로 대두된 한 해였다. 청와대가 소통부재를 자인하며 소통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을 정도니.
그러나 해가 바뀐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별로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간, 여야간, 그리고 은행과 기업간 소통 등이 원활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막혀가는 분위기다.
우리는 왜 소통이 안 되는가. 서로 남 탓만 하지 말고 각자 솔직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이글은 그런 뜻에서 내놓는 발제다. 나는 정치권에 들어와서 비교적 발제를 많이 한 편이다.
하지만 발제는 늘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그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기서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발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내가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악플이 무서워 내 홈페이지도 잘 못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나의 비겁함에 스스로 못 견딘다.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있느니 차라리 욕먹는 길을 택한다. 세상의 비난보다는 내면의 비난이 더 무섭다고 해야 하나.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여기서 체계적으로 총괄적으로 논할 자신은 없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우리의 소통을 가로막는 몇 가지 명백한 요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견과 선입견과 같은 고정관념, 이분법적 사고 특히 흑백논리, 오만과 독선, 무지 특히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부족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맞물려있다.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상 이것들을 구분해서 얘기해보자.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다.
부모들은 늘 자식들이 반정부시위에 가담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당시 우리사회의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짜식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데모나 하고 말이야.」 당시 데모는 거의 대부분 서울대에서 주동을 했다.
그렇다면 서울대생들이 제일 공부하기 싫어했다는 말이다. 그 때의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를 그런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학내서클에서 소위 이념서적을 읽으며 의식화를 경험했다.
특히 전환시대의 논리 등 이영희 교수의 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논리는 모두 지배계급이 강요한 허위였다는 자각에 치를 떨었다. 그 후부터는 세상이 모두 거꾸로 보였다. 내 의식의 시계추는 기성세대가 평균적으로 보였던 3시 방향에서 9시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그러나 9시 방향 역시 또 다른 고정관념의 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먼 훗날이었다. 역사교육의 편향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순화시켜 얘기하면 너무 9시 방향에서만 서술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현 정부에서 시도한 현대사교육의 특강에 등장하는 강사들 다수가 3시 방향의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참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 정부가 다시 3시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등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영혼이 없는 관료들의 과잉충성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인지….
어쨌든 3시 방향이든 9시 방향이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서로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한 쪽은 빨간 색 안경을 다른 한 쪽은 파란 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서 대화를 하니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뭐라고 저게 빨갛다고! 이거 미친 놈 아니야?」 이런 식이다. 이 얘기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엄청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살면서 우연히 갖게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선의든 악의든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주입된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믿고 목숨을 걸기까지 한다. 그래서 거의 죽일듯한 증오심을 가지고 악플을 다는 것이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아까운 인생인데 이따위 관념의 노예가 되어 남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을 증오의 칼로 깎아 먹으며 살아야하겠는가.
기독교 대학생 모임에 가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 도중 우리나라의 모 종교단체가 일본을 위시한 세계 각지에서 많은 돈을 끌어 모아 미국의 수도에서 유력 신문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쩌다가 하게 되었다.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 하나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곧 옆으로 쓰러질듯 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지독한 이단을 애국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눈치를 보니 도저히 내 얘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할 수 없이 사족을 달아야 했다.
「자기가 생각할 때 이단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애국자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설령 이단이라 해도 좋은 친구일 수 있고, 좋은 선생일 수 있으며, 좋은 상사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이단이면 종교적으로 문제이지 그 나머지도 모든 게 나쁘다는 그런 생각은 너무 터무니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걸 흑백논리라고 합니다.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은 이런 흑백논리를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최첨단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때때로 우리는 이런 야만적인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제 말이 지나쳤다면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용서를 빌기는 했지만, 실은 그나마 말을 많이 완화시킨 것이었다. 사실 21세기 지금에도 이런 야만적인 흑백논리는 아직도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의 대표적인 곳이 인터넷 공간이다. 이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흑백논리를 들라하면 지역감정을 들 수 있다. 지역감정과 애향심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고장과 그 곳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같다. 그런데 지역감정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지 않은 저 곳과 그 곳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애향심과 다르다.
저 곳 사람들은 다 나쁘다는 터무니없는 생각. 그래서 좋은 이웃도 좋은 제자도 좋은 부하도 될 수 없다는 이 야만적인 생각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러니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라 하지 않는가. 얼마 전 영남출신의 어느 언론인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자기 동향 후배가 나를 나쁜 놈이라 욕하기에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새끼 전라도잖아요!』 라고 했단다. 이건 실화다.
흔히 유치하고 천박한 수준의 사람들은 이 복잡하고 오묘한 세상의 모든 면을 단순하게도 이게 아니면 저거란 식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흑백논리로 발전하면 지극히 위험해진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를 조화와 균형보다는 반목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어쨌든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과, 더욱이 그런 사람들 간에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알아보지도 않고 서로가 저 놈은 그런 놈이야 라고 규정지어 놓고 무슨 소통이 되겠는가.
어느 누구든 자기 자신이 그런 이분법 또는 흑백논리로 규정지어 지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에 대해서는 계속 이분법과 흑백논리로 재단한다? 이런 자들이 많으면 세상은 너무 힘들어진다.
얘기를 하나보니 너무 길어져서 오만과 독선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 대해서는 다음기회로 미루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왜 소통이 안 되는가를 나 나름대로 풀어 보았다. 물론 이 얘기에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이제부터는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기고
신년기고/ 우리는 왜 소통이 안되는가?
sdmnews
2009-01-15 11:32
글·국민소통위원장 정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