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칼럼/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늦가을(晩秋)
글 우 원 상
2008-12-11 15:33
민족정기 서린 향토일화 감나무 가지마다 풍미 간직
설악산, 내장산 안부러운 비경에 희열감
글 우 원 상
10월도 중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가까웠으니 가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예전에 본 「만추(晩秋)」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어느새 가을도 깊어졌구나 하는 적에 내 가슴의 한숨도 깊어지는 듯하다.

홍제천변에도 온통 노랑색으로 물들고 점점이 붉은 단풍이 수를 놓아 길섶에 깔린 낙엽도 색조로우며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이 앞가슴을 여미게 한다.
멀리 떠나는 가을관광 행차(行次)에는 까지 못했어도 내 고장 홍제천 주변의 풍경에 젖으며 자족(自足)하리라.   

홍제천의 가을은 바로 서대문 일원(一圓)의 가을로 직결된다. 서대문 일원에는 단황(丹黃)으로 점철된 산들이 많아 산간 마을의 가을을 방불케 한다.
북한산 맥에서 북악(백악)이 내려앉고 인왕산, 안산, 백련산 등 명산들이 연이어 서울 성곽의 서북편 둘레에 솟아 있어 서울과 서대문 지역을 옹위하고 홍제천은 이 명산들을 한줄기로 엮어 내렸다.
또한 이산저산 민족정기가 서린 역사유적과 향토적인 일화들을 감나무 가지마다 빨갛게 열린 연시처럼 풍미(豊美)롭게 간직하고 있다.

여지껏 건성으로 여러 등산객의 틈에 밀리며 오르내리던 산행길에서 발길을 달리하여 조용한 오솔길을 호젓이 누벼봤더니 뜻밖에도 깊은 수림으로 하늘이 가리워진 심산유곡(深山幽谷)이 많았다.
이끼 낀 바위 밑에 풀 내음이 코를 찌르고 이름모를 산새소리도 유난히 청량(淸凉)하게 들린다. 우거진 풀밭에 색색가지 야생화들이 은둔하고 있는 비경(秘景)이 절품(絶品)이었다.

심지어 홍제천변의 낮은 야산으로만 여겼던 홍은산과 궁동산(104연희고지) 숲속에도 인적이 드문 가을의 신비를 비장(秘藏)하고 있음에 감탄했다.
참으로 미쳐 몰랐던 서대문의 또 다른 비경을 탐지한 희열감에 가슴이 후련하다. 어찌 「설악산」과 「내장산」만 산이랴! 아무려면 우리 고장에 전래된 정서가 서리고 정들여진 비경을 외면 할까나!
특히 수십 년 동안 메말랐던 홍제천 바닥에 지난 여름부터 맑은 시냇물이 돌아 왔다. 금의환향의 함성을 울렸다. (제1차 복원사업공사로) 서대문구민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자연섭리에 따르는 환경정화에 힘써야 되리라 믿는다.

잔잔히 흐르는 냇물소리에 양옆 풀섶이 자연스레 무성해지고 피라미와 잔챙이들이 생명수를 만나 실컷 헤엄치며 숨박꼭질을 한다.
하동(河童)들이 곤충채집망으로 물고기를 잡는다고 견자질 하는 것이 어설피 천진난만하다. 참새들 재잘거림에 비둘기떼가 날아들고 백로의 출현은 진귀(珍貴)하기만 하다. 깊은 밤 냇물 결을 타고 흐르는 달빛도 찬란하다. 

백련교와 홍연교 사이에는 원래 경치가 좋은 곳인데 물레방아 등 관망(觀望)시설과 휴식공간이 새롭게 곁들여져 가을정취를 돋울만 하다. 하늘 높이 솟은 묏 부리에 걸린 흰 구름도 조화롭다.
홍제천 양 기슭의 산책로에 나온 많은 인파(人波)도 저들 나름대로 운동을 즐기며 환담하는 모습들이 정겨웁다.

다양한 모습으로 조깅하는 행렬도 신명이 났다. 올 겨울에는 왁자지껄 아동들의 썰매타는 풍경도 볼 수 있겠거니 눈에 선하다.
머지 않아 온 지구촌의 경제위기 상황으로 위축되고 긴장됐던 민심도 촉촉하게 누그러지리라.
홍제천의 가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