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작은이가 만드는 큰 세상
박윤병 동대장/북아현3동
김화영 기자
2006-04-27 14:28
“복무 고충 ‘싹둑’ 잘라내죠”
권위 버리고 사랑으로 병사 통솔
박윤병 동대장(뒷줄 좌측)과 그가 직접 이발을 해주며 가족처럼 아끼는 상근 예비역장병들.

푸른 군복에 속칭 바리깡을 든 동대장. 환갑을 앞둔 그의 손에 들린 이발기가 병사들의 머리 위를 훑고 지날 때마다 지저분하던 머리카락도, 힘든 복무의 고충도 시원스레 툭툭 떨어져 나간다. 한참 어린 막내아들 뻘 되는 젊은 병사들의 머리를 손수 만져주며 『모두가 내 자식들 같다』는 박윤병 동대장(58)의 푸근한 모습에서, 권위적인 자세는 좀체 찾아볼 수 없다.

「병사들을 잘 이끄는 것은 권위도 강제력도 아닌, 바로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20여년의 동대장 경험으로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 동대장은 각 병사들의 집안사정, 성격, 취미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부모의 마음으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다. 박 동대장이 지난해부터 직접 이발기를 들고 나선 것도 바로 병사들의 경제사정을 배려한 데서 시작됐다.

통상 열흘에 한번 꼴로 미용실을 찾는 일마저, 주머니 가벼운 상근 예비역들에게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박동 대장이 처음 이발기를 들던 당시만 하더라도 『머리에 대고 자를 사발이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습니까?』라며 우려섞인 농을 건네던 병사들도 이젠 선뜻 머리를 맡기고 있으니 그의 이발 솜씨도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전문가들의 현란한 손놀림에는 미치지 못하는 서툰 솜씨지만, 정성껏 병사들의 머리를 만져주다 보면 어느새 계급과 직책에서 오는 이질감도 무색해진다. 한편 박 동대장은 병사들이 자칫 낭비하기 쉬운 젊은시절 황금같은 시간들도, 마냥 제 시간처럼 아깝기만 하다. 때문에 각 병사들에게 「일과를 마치고 나름의 목표를 세워 추진할 것」을 권유한 덕분에 이제 병사들은 퇴근 후에도 살빼기, 컴퓨터 등 다양한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역한 병사들의 직장까지 마련해줄 정도니, 그쯤되면 병사들에 대한 애정이 유독 별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그가 병사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데는, 3대가 군에 몸담은 집안내력이 짙게 배어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부친의 뒤를 이어 그가 군인의 길을 택했던 것처럼, 현재 박 동대장의 자녀도 그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고있다.

「권위주의로 점철돼 있을 것」이라는 군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쉽게 벗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박윤병 동대장의 이같은 모습은 그의 자녀뿐 아니라, 이미 그의 지도를 거쳐간 많은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북아현3동대 양한모(23) 병장은, 군생활 전반에 솔선하고 나서 최근 독수리부대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양 병장은 『일반적으로 상근예비역과 동대장님 간에는 세대차와 이질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우리 동대장님은 많은 대화를 유도하시고 자식처럼 보살펴주고 계신다』며 『동대장님의 자상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며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동대장의 바리깡이나, 아침식사를 거른 병사들을 위해 함께 나누는 컵라면, 동대장의 차량으로 동행하는 퇴근길. 그 모두가 이들에게는 군시절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최근 불거진 크고 작은 군부대 문제에 가려, 이런 가슴 훈훈한 풍경마저 왜곡되는 것이 자못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