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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1000명당 전화기 보급률 달랑 2대
sdmnews
2008-08-29 16:59
78년 전자식 교환기 도입으로 서민통신수단 거듭나
삐삐시대 20년 전성시대 마감, 휴대폰에 퇴조

전화 한 대 값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면?

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 무슨 소리냐 싶지만 불과 30년 전엔 그랬다.
1955년 전화가입자는 3만 9000명으로 인구 1000명당 2대꼴이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통신사업 5개년 계획이 착수되자 전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화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전화를 사고팔거나 전·월세를 놓아주는 「전화상」이 서울에만 600여 곳이나 성업했다.

전화를 둘러싼 부조리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전기통신법을 개정해 1970년 8월 31일까지 가입된 전화(가입자수 45만 7280명)는 매매할 수 있도록 하되, 그 후 새로 가입된 전화는 금지했다. 전자를 백색전화, 후자를 청색전화라고 불렀는데 당장 전화가 필요한 사람은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백색전화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전화 값은 더 뛰어서 백색전화 한 대가 260만원까지 치솟았다. 서울시내 50평짜리 집값이 230만원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한 가격이었다. 전화는 당당히 「재산목록 1호」일만 했다.

전화 값 거품은 1978년 전자식 교환기를 들여오면서 비로소 꺼지기 시작했다. 1986년 한국이 세계에서 10번째로 디지털식 전자교환기(TDX)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면서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통신수단으로 거듭난 것이다.
1988년 가입자 1000만 명, 1997년 2000만 명을 넘어 2007년 말 현재 2313만 명에 이르러 국민 두 명 중 한 명꼴로 보급됐다.

한편, 전화가 귀했던 시절 공중전화야말로 서민의 애용품이었다. 국내 첫 무인 공중전화기는 1966년 6월 1일 시내 중심가 10곳에 처음 설치됐다.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가서야 선보였는데 부스마다 시외전화를 걸기 위해 줄을 선 풍경이 낯익었다. 1982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시내·외 겸용 DDD 공중전화가 나오면서 공중전화도 보편화됐다.

같은 해 한국통신공사(현 KT)에서 떨어져 나온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T)가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했다. 삐삐의 등장은 통신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982년 235명에 불과했던 삐삐 가입자는 10년 만에 6178배인 145만 2000명, 1997년에는 1519만 4821명까지 불었다. 인구 세 명당 한 명꼴로 삐삐를 찼었다는 얘기다.

업계 1위였던 한국이동통신은 당시 세계 3위 가입자를 자랑했다. 「8282(빨리빨리)」, 「1004(천사)」와 같은 숫자의 의미를 모르면 신세대 축에 끼지 못할 정도였다. 삐삐의 대중화는 공중전화의 보급도 가속화시켜 1997년 42만 3502대까지 설치됐다.  

하지만 삐삐의 시대는 채 20년을 못 갔다.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된 지 불과 2년 뒤인 1984년 서울 구의동 광장전화국의 구석방에서 직원 32명으로 시작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차량전화 서비스팀이 국내 처음으로 카폰을 상용화했다. 첫 해 가입자는 2658명에 불과할 정도로 실적이 초라했다. 통화 품질도 떨어졌으며 전화기가 너무 커서 일반국민들의 실생활에 쓰기는 곤란한 상태였다.

그러나 1995년 한국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단말기와 통신료 문제가 한꺼번에 풀렸다. PCS 단말기는 휴대전화에 걸맞을 만큼 작아졌고 통신료도 쌌다. 기존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에 이어 1996년 PCS 사업자 3곳이 새로 시장에 진입했다.

PCS폰의 등장은 1997년을 정점으로 삐삐와 공중전화 시대의 퇴조를 불러왔다.
한때 신세대 젊은이의 필수품이었던 삐삐 가입자는 2008년 1월 말 현재 3만 9513명으로 줄어들었다. 공중전화 역시 1997년 이후 줄곧 줄다가 2002년 월드컵 때 다시 44만대 수준으로 늘었으나 그 이후 다시 급감해 2005년 14만대 안팎으로 줄었다.

반면 1996년 318만 989명이었던 휴대전화 가입자는 1년에 두 배씩 늘어나 1998년 1000만 명, 99년 2,000만 명, 2002년 3000만 명에 이어 2006년 4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2008년 1월 말 현재로는 4374만 5450명에 달한다.


<자료제공 :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