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인터뷰
3·1절 기념 재한일본인 인터뷰/우루시하라·오토시 지아끼
백민아 기자
2008-03-05 16:28
“독립열사 묘지 참배때 마다 눈물이 흐릅니다”
왼쪽이 우루시하라 아케미(42,漆原明美)씨, 오른쪽은 오토시 지아끼(41,大利千晶)씨다.
2002년 10월 이화여고에서부터 탑골공원까지 이어진 「유관순 열사님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일본 여성들의 가두행진 모습.

지난 달 본지 편집고문이자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우원상(78)고문을 만나고자 재한 일본인 여성 2 명(우루시하라·42,漆原明美/ 오토시 지아끼·41,大利千晶)이 신문사를 찾았다. 그녀들은 우 고문에게 한국의 독립운동사와 역사이야기를 듣고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실존 인물을 만난 기쁨과 감동을 안고 돌아갔다. 3·1절을 기념해 그녀들을 다시 만나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에 와서 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93년에 한국에 왔으니 살게 된 지 15년째 됩니다. 일본에서는 91년도에 「유관순 열사 정신선양회」가 결성됐는데 그해 12월 3200명의 일본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오사카에서 가두행진을 했어요. 『유관순 열사님,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요. 저희도 우연한 기회에 그 모임을 알게 됐고 그 이후 유관순 열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어요. 16세의 나이에 애국심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독립을 외쳤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말이죠. 일본에서 그런 여성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저희를 한국에 오게끔 한 큰 계기가 되었고 또 하나는 당시 문선명 선생의 세계평화통일가족연합운동이 일본에 성행했어요. 그 운동의 골자는 한국의 전통정신을 이어나가고 나라와 가정을 지키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효를 강조하는 사상이 감명 깊었어요. 그 때 한국으로 가서 더 공부해야겠단 결심을 하게 됐지요.

□ 한국인들은 유관순 열사에 대해 잘 알지만 어려서부터 많이 접하는 역사 인물이라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일본인들이 유관순 열사에 이토록 감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유관순 열사는 우리가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덕성을 모두 지닌 사람 같아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제일 먼저고요, 이웃을 사랑하는 봉사의 정신,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정신이 그것이죠. 유관순 열사에 대한 존경심은 일본 여성의 극소수라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아요. 91년부터 시작된 가두행진이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총 79회 행해졌고 참가한 사람의 숫자가 12만 명이 넘었으니 말이죠. 행진에 참가하면 행사장이 눈물바다가 되곤 합니다. 유관순 같은 여성으로 살아가야한다고 가슴 깊이 느끼게 되죠. 일본인 대부분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만 했지 식민 통치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애국심이란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 일본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까지 와서 살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 (우루시하라)=유관순열사와 한국의 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와서 지금은 한국인 남편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어요. 한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건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모든 어르신을 공경하는 부분이예요. 인간관계에 있어 질서가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일본에 있는 친정 부모님께 남편과 인사를 갔을 때 들어서자마자 절을 하는 남편을 보고 부모님이 감동하셨어요. 그만큼 한국은 본받을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에 와서 네 명의 아이를 한국인으로 키우면서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살 수 있어서 행복해요.

□ 앞으로 활동 계획이나 포부를 들려주신다면?
■ 저희는 진정한 한·일 관계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가 사죄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만이라도 해야지요. 우선 가까운 이웃에게 잘하고 참가정을 만들기 위해 사회봉사도 하고, 관내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도 자주 들러 참회할 생각입니다. 애국하는 행사가 있다면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