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변 일기초는 제목 그대로 홍제천을 벗하며 살아가는 글쓴이 우원상 선생의 소회를 일기형식으로 적은 글이다. 우원상 선생은 홍제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추억과 근대화 개발로 인해 메마른 홍제천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그는 자신의 추억을 되살려 홍제천을 통해 느끼는 서민들의 삶과 자신의 감성을 매호 연재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2007년 6월 9일 (토) 17。/27。 흐림
바야흐로 온누리에 푸른 활력소(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6월.
그 이름(題號)도 싱그러운 「홍제천 생명의 축제」. 이번이 제3회로 3년 고개를 넘는다.
홍제천변의 오후 1시. 드디어 축제 개막의 북소리가 높이 울리다. 홍남교 하류 고수지에 설치된 주무대를 기점으로 연가교를 넘어 사천교(모래내다리)까지 사이에 하얀 텐트(부스)들이 일렬로 줄지어 인파(人波)와 더불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 파장(波長)은 홍제천 복원을 갈구하는 서대문구민의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 하겠다.
개막식에서도 구청장을 비롯한 각계의 유지 및 외빈의 적극적인 호응이 아우러져 홍제천 생명의 축제가 정착되어 감을 짐작케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내일 밤까지 이어진다.
나눔의 예술, 태권도 시범, 시낭송, 음악연주(콘서트), 가요제 및 참여부스(Booth∼전시부스, 건강부스, 체험부스)등…. 오늘 밤무대에서는 노래와 춤, 이에 따르는 조명이 홍제천변의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교향(交響)을 이루어 휘황찬란 했다.
이 축제는 서대문문화원과 서대문사람들신문사를 중심으로 한 「홍제천생명의 축제위원회」가 구성되어(要路)의 후원 및 협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구민들의 호응이 없었던들 축제분위기가 이렇게 고조되어 갈 수 있었으랴.
6월의 푸른꿈을 안고 연일축제 준비에 동분서주 했던 일손들의 미소와 안도의 표정으로 보아 이번 축제의 성숙도를 가늠할 만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숙제를 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홍제천에 물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
모두 궁금해 한다. 언제쯤 냇물이 돌아와 천진난만한 하동(河童)들의 환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홍제천 복원은 서대문구의 숙원사업이다. 제1차 하천정비공사를 끝내고 계속하여 담수(淡水)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머지 않아 홍제천을 떠났던 옛물이 수십년만에 금의환향하리라. 하루속히 그 날이 오기를 두손모아(기도하는 심정으로)기다릴 뿐이다.
<- 하천변에 앉아 축제를 관람중인 주민들.
2007년 6월 10일(일요일) 22。/30。 햇볕 구름
오늘도 어제에 이어 홍제천 생명의 축제는 지속됐다.
축제 행사장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우리 집에까지 울려퍼지는 음악방송의 메아리로 미루어 축제분위기에 들뜬 인파의 웅성거림이 보이는 듯하다.
마침, 아침 결에 K씨(전 국회의원)와 통화하다. 축제 현장을 견학하고 싶단다. 겸손의 말씀. 그는 원래 시객(詩客)이었는데 시낭송프로시간에 맞추어 오후 2시경 행사장에서 맞이했다.
한창 무더운 대낮. 행사장에 진풍경이 벌어졌네!
무대 앞 관람석 한쪽에 뙤약 볕이 들자 일부 관중들이 바로 옆에 하천을 따라 뻗어나간 고가도로 밑 응달진 냇 바닥으로 내려가서 삼삼오오(三三五五)자리를 펴고 앉아 관람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마치 그 광경은 메마른 하천이 사람으로 물결치는 피서천(避暑川)의 양상(樣相)을 띄었네 그려!
하천 양기슭(兩岸)의 무성한 나무그늘에도 인산을 이루었다.
축제는 밤늦게까지 성황을 이루며 잘 마무리 됐다고 본다.
내년에는 옛님이 돌아오시는 듯 다시 시원하게 흐르는 맑은 냇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참고 기다림도 미덕(美德)이여!
또 한가지. 이번 축제 안내 팜플렛 끝머리에 「모래내 유감(有感)이라는 나의 글이 실린 것을 오늘에야 보았다. 문화원장(김환옥 씨)이 『이번 축제에 알맞는 글이 실려서 좋았다』고 튕겨주어서 확인했더니 이미 서대문사람들신문에 연재됐던 「홍제천의 봄」가운데에서 뽑아 한 몫을 채웠구먼!
어쨌건 읽어보는 이로 하여금 졸문(拙文)이나마 다소의 참작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