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은 그 당시 영의정을 지낸 송인명이 짓고, 글씨는 화산군 조카 서평군이 썼으며 비제호(명칭)는 낙충군이 직접 썼다.
그 비신의 높이는 295㎝, 폭은 106㎝, 두께는 60㎝로서 북가좌동 73-3에 위치하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돼 있다.
남가좌동 50-3에는 또 하나의 서울시 유형문화제 51호인 양호거사비(楊鎬居思碑)가 명지전문대학 경내에 보전돼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선지원을 위해 들어와 있던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개의 비 중 하나다. 헌종 1년(1835)에 세운 것은 대신고등학교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이 비는 선조∼영조 때(1598∼1764 사이)에 세워진 3기중의 하나로 보인다.
가좌동의 어원을 살펴보면 「가재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재울」은 「가장자리마을」, 「변두리 마을」이란 뜻으로, 큰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한갓진 마을을 일컫는 순수한 우리 토박이 말이다. 이 가좌동(리)은 전국에 수없이 많은데, 그 어원의 동기는 거의 한결같다.
가재울을 한자로 표기하려니까 이와 근사한 음을 따서 「加佐」라 불였고, 이것을 또 재탕해서 찬물에 사는 가재가 많아서 「가좌」라 했다고 말이 만들어져 구전처럼 내려오고 있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한자로 땅이름이 옮겨지면서 한자의 뜻을 풀어서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우리 토박이 땅이름에는 우리 겨레의 역사와 전통과 향토성이 내재돼 있다.
가좌역도 차라리 온 세상이 다 잘 아는 모래내역으로 고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가재울」이라 하던가!
최근에 개발중인 가좌뉴타운의 이름이 가재울뉴
타운으로 변경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경의선 열차가 문산까지만 왕래하는 단거리선수에서 벗어나 평양·신의주까지 남북통일 코스를 달리는 장거리 마라톤 선수가 되는 길이란 것을 왜 모르나?
가재울이여 모래내여! 새 시대에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통일로 세계로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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