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칼럼/홍제천의 봄
모래내와 가재울(가좌동) (1)
著者 우 원 상
2007-09-12 19:20
加佐는 ‘가재울’ 어원의 억지 표기
‘가재울’, 한갓진 마을 일컫는 순수토박이말
著者 우 원 상
화산군신도비
모래내가 하천의 이름일 뿐 아니라 한 지역을 지칭하는 땅이름으로 달무리 같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가좌동(加佐洞) 하면 모래내의 중심지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러나, 모래내는 행정지명이 아닌 민초 구전(口傳)으로 자연스레 메아리진 이름이다.

이 가좌동은 모래내시장으로 유명하다. 또 시장 앞에는 가좌역이 경의선(京義線) 위에 뚜렷이 한 점을 차지하고 있다.
가좌동은 남가좌동, 북가좌동으로 반반씩 나누어져 있다. 변두리 마을들로 인구도 적고 가장 늦게 개발된 곳으로 1970년대 들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거듭 남가좌1·2동, 북가좌1·2동으로 세분화돼서 남북이 4개의 행정동명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의 남가좌동은 한성부 북부 연희방 가좌동1계(加佐洞一契), 또는 망원정계 월사동(月沙洞)이라고도 하였고 북가좌동은 한성부 가좌동2계(加佐洞二契)라 했던 것이 일제하에서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남가좌리」, 「북가좌리」라 했다.

광복 후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남·북가좌동으로 오늘의 서대문구에 소속됐다. 지리적으로는 서남쪽에 경의선 철도를 경계로(일직선으로) 마포구와 접하였고 동남쪽으로 남가좌동이 홍제천(모래내, 또는 城沙川)을 경계로 연희동과 접하였으며, 서북쪽으로는 북가좌동이 불광천을 놓고 은평구 증산동과 접하였다.

동북쪽으로는 북가좌동이 은평구 응암4동과 선을 긋고, 남가좌동이 홍은3동과 지경을 이루며 지척에 있는 백련산 그림자를 밟고 경티절(백련사)의 목탁소리를 들을 만하다.
가좌동 내에서는 산이나 녹지대가 없지만, 우뚝 솟은 북한산을 멀리 우러러 보며 그 정기를 타고 내려온 백련산, 안산, 연희고지와 응봉(235.7m) 줄기와 마주하면서 남쪽 멀리 관악산을 조망할 수 있어 좋고, 홍제천, 불광천, 경의선을 끼고 있는 것이 한결 한가롭고 울타리가 돼서 주택지역으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이 곳의 옛 마을 이름들을 짚어 보면 이계말(가좌二契), 경팃말(백련사 아랫동네), 벌말(현 명지대학 앞 벌판), 불당골(북가좌2동), 신근서리(植松里~북가좌초교와 증산교 사이), 능안말, 거북골(북가좌동의 주축을 이룬 마을) 등 많으나 이 가운데 거북골이 화산군 신도비(일명 거북비)로 이름난 곳이다.

그 신도비는 선조(1567~ 1608)의 제7왕자인 인성군의 손자 화산군이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판이었던 행적과세계(世系)를 기록한 비로서, 거북이 석상의 받침돌이 비신(碑身)을 받치고 있다. 그 주변의 마을을 「능안말」또는 「거북골」이라 불렀다.
화산군 신도비(花山君神道碑)는 영조 23년(1747) 화산군의 아들 낙창군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