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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희생 ’18년만에 개관한 이한열 열사 추모기념관
고은희 기자
2006-04-22 17:33
고귀한 죽음, 곳곳에 기려
국내 최초 열사 기념관 아쉬워
기념관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내빈들이 모였다.
기념관 개관에 앞서 배은심 씨외 관계자들이 테잎을 자르고 있다.
이한열 기념관을 찾은 사람들이 이 열사의 사진을 보고 있다.
가수 안치환씨가 이한열 열사를 위해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열창하고 있다.

1987년 6월 9일. 민주화를 위해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청년 한 명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는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진 후 27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맸지만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21살의 꽃다운 나이 이한열 열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2005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를 기념하는 작은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한열기념관 개관식에는 이한열 열사 가족과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국회의원을 비롯해 송영길ㆍ이인영ㆍ고진화 국회의원 등 「386정치인」들과, 김명숙 시의원, 박상철 서대문구열린우리당원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 외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도 기념관을 찾았다.

사회는 이 열사의 연세대 동문인 손범수 아나운서가 맡았다. 이한열기념관 건립위원회 오충일 대표는 『87년 6월,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6월항쟁에 대한 열의가 불타올랐다. 아직도 그 때의 함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고 전하며 『지금 이 자리, 이 열사의 뜻이 담긴 곳에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그의 뜻이 가슴속에 살아나는 것 같다』며 추모의 뜻을 밝혔다.

연세대학교 민경덕 교학부총장은 『꽃다운 자식을 나라에 바친 부모들이 아직도 많다. 이한열 열사 기념관을 시작으로 그들의 기념관이 세워질 그 때까지 우리 가슴에 그들의 정신을 깊이 새기자』고 당부했다.

한편, 기념식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앉아있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한열이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기념관을 마련했지만, 아들이 없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집들이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 아프다』고 전하며 『민족을 위해 희생된 이들의 묘지가 전국에 산재해있다. 이들의 묘를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을 빨리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어 민중가수 안치환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열창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민가협과 유가협회원들은 연신 눈물을 닦으며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기도 했다. 이한열기념관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54-38번지에 지하1층 지상 4층, 연건평 100여평 규모로 건립됐다. 지난해 6월 공사가 마무리됐지만 건축대출금상환 때문에 완공된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관할 수 있었다.

총건축비용 4억160만원 중 3억8600만원이 국민모금을 통해 모아졌다. 한편, 기념관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의 기념관 중 제1호로 기록됐다. 우상호 국회의원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만드는데 소중한 생명을 바친 열사들의 개인 기념관이 없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민주주의 역사의 발자취를 알 수 있고, 열사들의 뜻을 기릴 수 있는 기념관이 많이 지어지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전했다.

기념관 1층은 전대협 동우회가 자리잡았고, 2층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들어왔다. 3층과 4층에는 이한열 열사의 사진과 글모음 등이 전시돼있으며 전시관 입구에는 어머니 배은심 씨와 형제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 등 정치인들이 남긴 추모사가 새겨져 있다.

전시관 내에는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았을 때 입었던 파란색 셔츠와 바지, 밑창이 떨어져나간 운동화 한짝이 주위를 숙연하게 한다. 기념관 홈페이지는 열사가 숨진 날인 「www.198 70609.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