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봄(37)/안산 가득 피는 벚꽃
sdmnews
2007-07-18 10:38
무궁화와 어떤 연분인가?독립문화와 벚꽃은 어울리지 않아
서대문의 텃밭에도 무궁화 동산을…
著者 우 원 상
한국의 봄은 어떤 것인가.
고향의 봄은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를 첫번에 그린다.
요즘 도시의 봄은 목련화에다 벚꽃이 토박이 꽃들을 제치고 화사하게 웃으며 활짝 다가선다.
하면 한국의 봄처녀는 어떤 모습일까?

뭐니뭐니해도 우리 민족정서가 깊이 서려있는 꽃은 진달래라 하겠다.
남단 제주 한라에서 북녘 한밝뫼(백두) 넘어 송화가람가에까지 자생하며 연연세세 강산을 붉게 물들여온 진달래가 바로 우리네의 봄처녀가 아니겠는가.

하오나, 유구한 역사민족의 맥을 면면이 이어온 우리의 나라꽃(國花)은 무궁화(無窮花)! 그런데 일본의 나라꽃인 벚꽃이 우리 강토를 석권하고 있지 않는가.

겨우내 기다렸다는 듯이 진해의 봄은 벚꽃으로 온 시가지를 장식하고 군항축제(軍港祭) 기간은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로 발들여 놓을 틈조차 없다. 이 벚꽃 요정(妖精)은 지리산 기슭에서 섬진강변을 구비돌아 골골마다 도시마다 휩쓸며 서울로 북상한다. 여의도를 선두로 남산, 창경궁, 여러 고궁과 공원을 맴돌며 끝으로 독립문화의 고장(터전)인 서대문의 안산 기슭까지 공략해서 서울 시민의 넋을 잃게 한다.

그리고, 동해를 건너 왜섬 복마전(伏魔殿)에 앉아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獨島)를 저들의 섬이라고 넘실거리며 지난날의 군국패권을 꿈꾼다.
일제가 한국 강점기에 벚꽃을 전국 방방곡곡 파식(播植)하여 파급시켰던 것이 패망 후에도 그대로 방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오히려 근래에 와서는 벚꽃을 우리손으로 보호육성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를 어찌하랴.

광복 후 반세기가 넘도록 일제의 잔재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잣대질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나라꽃(무궁화)이 도리어 소외당하고 홀대받고 있는 정도니까! 북한에서는 해방 직후에 벚꽃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었다.

반백년 동안 범국가적(또는 범국민적)으로 무궁화를 소중히 가꾸고 권장해 왔더라면 오늘날 온나라 안팎이 무궁화 동산으로 화려한 강산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 오랜 세월에 애국가(무궁화 삼천리 화려한 강산)를 숱하게 불러 왔건만 그것은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인가.
어느 위정자가, 어떤 자치지역장이 정책적으로 나라꽃을 장려한 적이 있는가?

우리 고장 서대문구에서도 벚꽃을 중점적으로 심어서 상당한 파급성과를 보고 있다. 관광, 휴식처, 산책로 등의 운치를 높이자는 착상이었겠지만 왜 하필이면 벚꽃이라야 하나? 이것은 자치지구 운영에 있어서 역사의식과 자주정신의 빈곤이라 할 것이다.

특히, 서대문의 긍지인 독립문화와 벚꽃하고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서대문의 주산(主山)인 안산이 왜 벚꽃으로 치장되어야 하나!
일본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서 살던지 저들의 나라꽃인 벚꽃을 열심히 심고 가꾸어서 일본정신(大和魂)을 뿌리내렸다.

우리는 어떤 면이 좋다고 벚꽃을 선호하는가? 벚꽃은 초봄에 잠깐 동안 활짝 피었다가 급히 스러지는데 비해 무궁화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무려 100여일간이나 계속 피고 지는 유연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벚꽃은 일본 민족을 닮았고 무궁화는 한국 민족을 닮았다고 평가 받는다.
하기야 벚꽃의 원산지도 한국이요, 무궁화 또한 나라꽃으로 토착화 됐으니 두꽃이 함께 동향(同鄕)의 인연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참으로 기이한 연분이네!

어떻든지 서대문 텃밭에는 하루속히 무궁화 동산을 조성해서 독립문화를 북돋우어 조국의 완전독립과 자주통일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