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40년 만에 찾은 베트남, 눈물의 위령제
옥현영 차장
2007-06-22 11:17
월남참전전우회 서대문지회원 8명 베트남 접전지 찾아
호국보훈의 달 맞아 자비 털어 추모방문단 결성
호국보훈의 달 맞아 자비 털어 추모방문단 결성
8일 호치민시에 위치한 사찰 영음사를 찾은 회원들은 월남전 당시 전사한 5700여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다.
단일작전지로는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앙케계곡 꼭대기에 세워진 전승비. 그러나 북베트남이 정권을 통일한 후 전승비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해병대 1개 중대중 단 3명의 생존자만이 살아남았던 쩌민둥 격전지에서 참배 후 기념촬영을 한 참관단.
맹호부대 수색중대 26대에 소속됐던 배선규 회장이 36년만에 베트남을 찾아 새로운 감회에 젖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월남참전전우회 서대문지회(회장 배선규)가 전쟁 발발 46년만에 격전지였던 베트남을 찾아 전사한 국군에 대한 위령제를 지냈다.
이번 베트남 참배는 그간 5700명의 국군이 전사한 참혹한 월남전투에 대해 국가나 단체 모두 관심을 갖지 못한 데 대해 춘천, 평택시 재향군인회와 서대문재향군인회 회원 20여명이 사비를 털어 이뤄졌다.
위령단에 참가해 베트남을 순회하고 돌아온 배선규 월남참전전우회장은 『현재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로 정권이 이양된 후 월남전과 관련된 한국군에 대한 위령탑 등 흔적을 모두 파괴한 상태인데다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온 사절단임을 알리는 현수막 하나 걸 수 없어 참관 회원들 모두가 눈물을 머금고 가슴 아픈 일정을 보내야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5일 6박7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은 서대문구 월남참전전우회원 8명은 첫날 호치민 공항에 도착, 단항으로 이동한 후 호이안 청륭부대와 쩌민둥 전투지역을 찾아 참배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쩌민둥은 해병대 1개 중대가 전멸, 단 3명만이 생존한 지역으로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원배 씨가 생존, 현재 재향군인회 본회 부회장을 맞고 있다.
6일은 호이만으로 이동해 해병대 연단본부 근거지를 찾아 참배하고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앙케계곡을 찾아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특히 앙케계곡은 베트공들이 계곡 사이에 땅굴을 찬 채 매복, 1개 대대가 전멸할 만큼 치열한 전투지인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7일은 키논 맹호부대 사단 사령부가 주둔했던 송카우와 백마부대 주둔지인 투이호아, 오작교 작전지역이었던 혼마산 등을 방문하고 8일, 나트랑으로 이동, 백마 30연대의 캄남을 참배했다.
같은 날 다시 호치민시로 이동해 사찰인 영음사를 찾아 당시 전사한 5700명에 대한 위령제를 2시간동안 지냄으로써 유일한 공식행사를 가졌다.
9일에는 호치민 구찌터널을 답사하고 전쟁기념관을 견학한데 이어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매콩강을 찾아 참배하고 새벽 1시 비행기로 귀환했다.
호국보훈의 달 특집Interview
배선규 월남참전전우회 서대문지회장
국가·세계평화 위해 잠든 참전용사넋 헛되지 말아야
6박7일간 눈물의 여정 마친 심정 “착잡”
1961년 베트남 민주공화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후 철수하자 2차로 미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 : 월맹)사이에 일어난 전쟁인 베트남전은 1975년 4월 말 사이공을 북베트남이 점령함으로써 종전될 때까지 무려 15년간 계속됐다. 이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의 수는 모두 32만명. 이중 5700명은 현지에서 전사하고 현재 생존자는 26만 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국가유공자로 대우받지 못한채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당시 전사한 국군에 대한 추모는 물론 고귀한 죽음을 돌아보는 이는 전무한 실정이다. 베트남전 당시 송카우 맹호부대 수색중대 26대에 소속됐던 배선규 서대문월남참전전우회장은 이같은 현실에 통탄해 오다 지난 5일 격전지였던 베트남을 36년만에 찾았다.
배 회장을 통해 현장 분위기와 감회를 들어본다.<편집자주>
□ 36년만에 베트남을 찾은 감회는?
전쟁이 끝난 후 36년만에 베트남 격전지를 돌아보니 함께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이 아쉬운 점은 사회주의인 베트남북공화국이 통일을 주도하면서 그간 한국군이 주둔해 승리를 거뒀던 지역의 승전비 등이 무참히 파괴돼 있어 유명을 달리한 넋들의 영혼이 가여워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단일작전 중 가장 치열했던앙케계곡 전투에 승리 한 이무표 소대장이 태극기를 꽂았던 정상에 세워진 기념비마저 사라져 월남전 당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알려진 앙케전투 사상자들의 넋이 아직도 현장에 머물고 있는 듯 해 안타까웠다. 앙케계곡 뿐 아니라 전적지에 세워진 모든 비석들이 사라진 상태다.
□ 이번 위령단의 베트남행은 어떻게 이뤄졌나?
그간 월남참전용사들은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지 못할 뿐더러 고엽제 피해자나 전사자에 대한 보조만 있을 뿐이었다. 재향군인회 본회가 있으나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처우까지 돌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년 호국보훈의 달 6월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춘천, 평택지회 전우들과 함께 베트남 방문을 논의했고 뜻있는 지역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비로 추모방문단을 구성했다.
21명이 베트남을 방문해 6박7일간 쉴틈없는 일정으로 각 격전지를 돌아보고, 참배했다.
□ 베트남 현지에서 지원은 있었나?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추모방문단이라는 말 조차 할 수 없어서 우리끼리 조용히 위령제를 지냈다.
단 8일 하루 호치민시의 사찰인 영음사를 찾아 스님들과 함께 공식적인 위령제를 2시간 가량 지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전사한 5700명의 전우들의 넋을 떳떳하게 위로조차 할 수 없음에 가슴이 아팠다. 함께 간 전우회원들은 모두 많은 눈물을 흘렸다.
□ 앞으로의 계획은?
월남에 파병된 참전용사들은 가난하고 없던 시절, 조국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 국가의 공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우도 없을 뿐 아니라 월남참전용사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당시 참전용사들은 현재 모두 60이 넘은 고령자들이다.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이나마 꾸준히 기울여 나갈 생각이다. 또 가능하다면 해마다 추모방문단을 꾸려 6월경 베트남을 방문하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싶다. 그러나 비용 등 예산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이번 추모방문단을 위해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신 분들이 많다. 재향군인회 최한민 이사님과 안보환 전감사님, 최광진 전 서대문구의장, 홍은2동 영남향우회 최승관 회장님, 서대문경찰서 정보과 박동순 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