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봄(35)/성화의 뿌리역사 간직한 무악 봉수대
著者 우 원 상
2007-06-13 18:00
안산 마지막 봉화는 ‘해방의 횃불’
새천년 맞이 무악 봉화제를!
著者 우 원 상

봉수(烽燧) 제도는 현대와 같이 전파통신이 없던 옛 시대에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전달 경보하는 군사통신의 주요수단으로 밤에는 횃불(烽), 낮에는 연기(燧)로써 신호했다.
이 제도는 고대부터 시행된 것으로 추측하겠으나, 고려와 조선조에 내려와서는 국가제도로 발전 정비됐다.

임진왜란(1592년) 이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다가 결국 고종 31년(1894)에 폐지됐다.
봉수 간선의 제1거(炬)는 동부의 함경도 경흥, 제2거는 동남의 경상도 봉래, 제3거는 서부의 평안도 강계와 의주, 제4거는 서북해안의 의주, 삼화, 장연, 해주, 제5거는 서남의 전라도 순천 등을 거점으로 다섯 봉수로를 두어 한성의 목멱산(木覓山~남산)으로 연락이 집결됐다. 무악(母岳~안산)의 동쪽 봉우리에 위치한 동봉수대(봉화대)는 제3거로서 근래에 폐허화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여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했다. 무악의 서쪽 봉우리에 위치한 서봉수대는 제4거 봉수로였으나 현재는 전천후(全天候) 통신탑이 서 있어서 동ㆍ서 봉우리가 지척에 이웃하고 있으나, 고금(古今)의 엄청난 격차가 비교되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이 무악 봉수대가 우리나라 성화의 초석 구실을 한 뿌리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처럼 들린다.


나라 위급 알리던 봉화, 완전독립 축하 횃불로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안산서도 타올라

때는 단기 4279년(1946) 광복절에 해방 1주년 기념을 위해 관ㆍ민ㆍ사회 각계의 다채로운 축하행사가 진행되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역사적 의의가 깊은 축제가 있었으니, 바로 서울의 세 명산인 남산, 북악, 무악(안산)에서 3일간의 봉화제전(烽火祭典)을 거행한 것이다.

그 봉화의 불씨를, 국조를 모신 대종교(大倧敎) 천진전(天眞殿)에서 받기로 하고, 8·15전야(14일) 오후 6시에 성화전수식(聖火傳授式)을 거행하고 대종교주 단애종사(檀崖宗師~윤세복선생)에 의해 채화되어 성화전송대표단 대표 손기정(孫基禎)씨에게 전수하여 우리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에 전달됨으로써 서울의 세 명산에 점화, 감격에 넘치는 횃불이 하늘높이 솟았다. 나라의 위급을 알리는 봉화가 아니라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난 해방의 축하횃불이었다. 완전 독립을 기원하는 민족의 성화였다.

하늘의 별들처럼 헤일 수 없이 많은 순국 영령들의 혼이 응집된 열화(烈火)였다. 이렇게 승화된 성화를 영구히 계승시키기 위해 그해 10월 3일 개천절날 정오(正午)에 국조단제께서 직접 제단을 쌓아 천제를 드렸던 유구한 역사적 성지 강화 마리산 참성단에 옮겨 성화제를 봉행함으로써 민족 성화가 자리잡혔다.

오늘날 외래 풍조에 제 얼을 잃어버린 우리 현실은 민족 성화의 내력조차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렇지만 독립문화의 고장 무악(안산)이 엄존하는 한 잊혀질리가 있으리오.
이제 새천년 새시대 새해를 맞이하는 경외로운 시점에서 우리 다함께 무악봉수대에서 밝은 미래를 다짐하는 봉화제를 높이 받드는 쾌거(快擧)가 성사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금자탑(金字塔 부제: 안산의 메아리)

고은 산 고은 님 고은 빛이여
모악정 청솔 밭에
백년가약(百年佳約) 맺으랴

노을 진 산기슭
그토록 그리움에
무던히도 산까치
허공 속 날더이다

백사(104)고지 이념의 응어릴랑
벚꽃의 화사함에 넋을 잃고
아카시아 향에 흠뻑 취해 있구려

황성 옛 터 치맛 자락
인왕산 어진 품에 한으로 남았도다
사모바위 얼싸안은 북한산 자락
그 맘 새긴 듯 등 굽혀 서 있구나

여명(黎明)의 새날이 우릴 부른다
안산의 기상이여
봉수대의 불꽃이여

천년만년 꺼지지 않는
보석보다 찬란한 숭고함이여
우정의 깃발 높이 들고
저 숲속에 금자탑(金字塔) 쌓아 올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