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봄(33)/서대문의 상징 안산(鞍山)의 메아리
著者 우 원 상
2007-05-18 13:11
산이 깊어야 메아리의 진폭도 크다
중후하고 깊이 있는 자연공원으로 가꿔야
著者 우 원 상

서대문구의 중심에 자리잡은 안산(鞍山)은 다른 행정구역과 겹치지 않고 완전독립된 역사깊은 산이다.

서울의 성곽(城郭) 둘레의 4대문 가운데 하나인 돈의문(서대문)은 단기 3728년(서기1395)에 이성계(이태조)에 의해 축성된 성문으로, 그 위치는 신문로 정동과 평동을 잇는 언덕 위에 서 있으면서 반천년 이상(520년간)의 역사와 기나긴 세월 속에 숱한 영욕(榮辱)을 조선조와 함께 하였으나 단기 4248년(서기1915)에 일제(日帝)에 의해 헐리고 말았다.

이 한많은 서대문(돈의문)에 연유하여 그 문밖 일원을 서대문구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 문밖에서 제일 가까운 뫼가 안산(296m)으로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338m)과 가장 친근한 이웃끼리이다.

서울의 상징인 북한산 정기를 같이 타고 내려온 한 산맥붙이라 하겠다.
옛 이야기에 「인왕산 호랑이」가 한 번 포효(咆哮)하면 안산으로 건너뛰고 또 한 번 포효하면 다시 인왕산으로 건너며 오락가락하면서 비호(飛虎) 같은 명성을 떨쳤다 한다.
안산에서 서편으로 내려다보면 홍제천(모래내) 건너편에 경티절(白蓮寺)을 품고 있는 백련산(216m)이 가깝게 손짓한다.

남쪽으로 서강대학 뒷산 노고산(106m)과 홍익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와우산(102m)도 안산에서 뻗은 뫼뿌리들이다.
조선초 개경(開京)에서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옮길 때에 한강으로 앞에 줄을 긋고 안산을 배경으로 하여 궁궐을 세우려 했다가 뒤로 한 뼘 물린 것이 오늘날 서울의 한복판 「4대문안」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안산은 조선조 한양천도(遷都)와 더불어 희비쌍곡(喜悲雙曲)의 제반사를 함께 겪었다.
단기3957년(서기1624)의 이괄(李适)의 난(亂)도 안산에서 결전(決戰)지었고, 북방대륙과의 관계에서도 무악재를 옆에 끼고 흥망성쇠를 같이 하였다.

안산 정수리에 봉수대(봉화대)의 설치와 근세에 와서 민족 자주 자립을 표방한 독립문이 안산 기슭에 세워진 것만으로도 그 배경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제 시대에 수많은 애국지사를 처형했던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 독립공원이 조성된 것도 요즘에 역사관이 개관된 것도, 다 역사를 증거하는 산 교육의 현장으로 서대문구의 긍지인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안산은 여러 상아탑을 거느리고 있다. 연세대학, 이화대학을 비롯하여 경기대학, 감리교 신학대학, 서강대학, 홍익대학이 모두 안산자락에 의지하고 있는 미래의 무궁한 유망주(有望株)들이다.
또한 새절(奉元寺)과 서대문도서관, 자연사박물관, 서대문구청, 그 옆에 서대문보건소를 안고 있다.
안산은 줄기줄기 골짜기마다 애환이 담긴 전설을 품고 있으면서 이 고장 사람들의 고향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나는 어려서 봄이 오면 동무들과 진달래꽃도 따고 산나물도 뜯을 겸 안산을 오르내렸다. 여름에는 송이버섯도 따왔다.
그 당시는 산이 깊어서 서남쪽에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무성해서 하늘을 가렸고, 노송(老松)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도 누구하나 건드리지를 않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자연학습을 위한 소풍도 많았다.


연세대학이나 이화대학은 숲속에 가려진 선경(仙境)으로, 선남선녀들의 노님을 보는 듯 선망의 대상이었다.
홍제천도 맑아서 미역감고 놀았던 천상의 놀이터였다.
안산은 또 나의 어릴 적 추억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70대가  된 지금도 안산을 가끔 찾아오른다. 이러한 안산의 자연을 자꾸 잠식해 올라가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 울창한 숲도 변질이 됐다. 6·25사변 이후 급속도로 안산의 생태계는 변해갔다.

몇해 전 여름 장마철에 안산에 산사태가 난 것도 이러한 자연 생태계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용서하려 해도 자연은 훼손당한 것만큼 인간에게 무서운 재앙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을 깨우쳐 준 재해였다.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을 테마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 말씀 드린다면 역사 깊은 안산은 아기자기한 공원으로 깎아내려 가꾸기보다는 중후(重厚)하고 깊은 산으로 가꾸고 키워서 영구성을 띤 자연공원으로 복원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산이 깊어야 암탉이 많은 병아리를 품듯 시민을 위한 여러 시설을 집어 넣을 수가 있다.
이 고장 사람들에게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도록 하고, 좋은 약수와 지하수를 제공하고 건강을 지켜 주는 산으로 가꾸어야 한다.

안산을 서대문의 상징으로 복원해 독립문화와 시민의 정서를 북돋우고, 미래를 약속받는 상아탑으로 높여 주자.
산이 깊어야 메아리의 진폭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