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봄(29)/북아현동은 사연도 많은 애오개에서 유래한다
著者 우 원 상
2007-04-04 11:59
달아나는 아이 막는 엄마산 안산(?)
아이 무덤 많아 애오개 유래에 영향 미쳐
著者 우 원 상

아현동(阿峴洞)하면 의례 애오개를 떠올린다.
애오개를 한자화(漢字化)하여 「아현」이라 하고 그 북쪽에 위치하므로 북아현이라 부르게 됐다.
조선시대에 도성 밖이지만 한성부 북부 연희방(坊) 아현1계(契)로서 능골(陵洞), 아현동 걸바위골, 복주산골(福主山洞), 너른바위골(廣岩洞), 굴레방다리골 등 옛이름을 가진 여러 동네를 싸안은 지역으로, 안산(296m)의 한 지맥(支脈)인 금화산을 배경삼아 큰고개와 애오개 사이의 일원이다. 단기 4244년(1911)에 일제가 경성부 연희면에 편입시켰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北里)로 바꾸었다. 1936년에 경성부로 재편입되어 북아현정(町)이라 했으나, 광복과 더불어 「경성」을 「서울」로 개정(1946)한 후 에 북아현동으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신촌로를 경계로 남쪽의 아현동이 마포구에 속하고 북아현동은 서대문구에 소속돼 있다. 원래 하나의 「아현」이 남북으로 갈려 북아현동이 되고 인구의 급증으로 북아현이 또다시 행정상 1·2·3동으로 분할되었으며 남쪽의 아현동도 마찬가지로 3개의 행정동으로 나누어졌다. 그만큼 복잡한 도시로 급변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하여 조용하고 살기 좋았던 향토의 낭만이 밀려났음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금화산 배경으로 큰 고개와 애오개 사이 마을이 (북)아현
서대문네거리∼마포공덕동 방향 아이고개 변음된 ‘애오개’로 불려

이제는 아현이란 동명보다도 그 근원이 된 애오개의 유래가 궁금하다.
서대문 네거리에서 마포 공덕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애오개, 애고개, 아이고개 또는 애우개라 부르며 이를 아현(兒峴∼뒤에 阿峴이 됨)이라 적는 바 동남쪽의 만리재(萬里峴)와 서북쪽의 큰고개(大峴) 중간에 자리한 작은 고개라서 「아이고개」라고 부른 것이 애오개가 됐다는 설이 있으나 미덥지 않다. 사유야 어떠하든 아이고개가 「애오개」로 변음된 것만은 사실로 믿는다.


다음에 도성의 주산인 북악(北岳)을 부아산(負兒山)이라고 하는 것은 산모퉁이가 달아나려는 아이 모습이라 이를 막기 위하여 서쪽산 안산(鞍山)을 모악(母岳∼무악)이라 이름지어 어미가 아이를 업도록 하고 남쪽산을 벌아령(伐兒嶺)이라 지어 아이가 달아나면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서남쪽의 한 고개를 병시현(餠市峴)이라 이름짓고 떡을 주어 달래는 고개로 삼아 아이현(兒耳峴, 阿峴)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고개가 애오개다.

작은 고개 ‘아이고개’, 아이무덤 많아 ‘애오개
두 가지 설 역사적 토대 볼 때 후자에 무게 실려

또 하나는 아이 무덤이 많은 데서 생긴 고개 이름이라는 설이다. 장안에서 초상이 나면 그 시체(屍體)를 수구문(水口門∼光熙門)과 서소문(西少門)을 통하여 나가게 했으며 특히 어린이 시체는 서소문밖 애오개를 지나서 묻게 하였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애기능인 의령원(懿寧園∼사도세자 장남의 묘소∼2살에 죽음)이 애오개 옆에 있었다는 것도 애오개와 무관하지는 아닐성 싶다. 아니 주설(主說)일 수도 있다. 그 당시 왕권의 위상으로 보나 실제의 대역사(大役事)적 상황으로 보아 충분히 주설일 가능성이 많다.
애오개에서 전철 2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면서 두 곳에 전철역이 생겼다. 2호선에는 굴레방다리 근방에 아현역이 섰고 5호선에는 고개를 넘어 평지로 내려가서 마포경찰서 못미처에 애오개역이 나중에 들어섰다.


아현과 애오개의 두 역은 뜻이 같은 국·한문(國·漢文) 이름으로 각각 붙여진 것이 대조적이어서 이채롭다.
역사적 인연이지만 「애오개」라는 우리 토박이 땅이름을 역이름으로 붙인 것이 참으로 진취적이고 혁신적이라 하겠다.
한 예를 든다면 뜻도 모르는 가좌(加佐)역은 무엇인가?
온 세상이 다 잘 아는 모래내지역이니 「모래내역」이라고 하는 것이 월등하게 향토적 정서와 정체성을 살리는 선진적인 면이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