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新村) 하면 신촌로타리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를 넓게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구·동별도 구분없이 큰고개(大峴洞)에서부터 창천동(창내∼滄川), 봉원천(奉元川)을 끼고 마포구의 대흥동·노고산동·창전동·동교동 등 일부씩을 끌어당겨안고, 서대문구 대신동·창천동·신촌동·봉원동과 연희동 일부를 둘러싸 안은 광범위한 자연지역이다.
지리적으로는 안산(296m)과 노고산(106m) 및 와우산(102m)을 주위에 둘러세우고 있다.
그러나, 신촌지역은 모래내 지역과 함께 행정지명이 아닌 민초들의 입으로 호칭되는 보재기 같이 포용성이 깃든 도량 큰 지역을 뜻한다. 이러한 자연지역은 지방의 향토문화적 정서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신촌지역의 근원은 ‘신촌’동에서 연유한다. 또 신촌(新村)이란 땅이름의 어원(語源)은 새터말(새말∼새마을)을 한역(漢譯)한데서 생긴 것이다.
다시 새(터)말(새마을)의 연원(淵源)은 어떤가?
창천(창내)과 봉원천 주변의 펑퍼짐한 대지는 지금의 신촌동, 대현동, 창천동(일부)지역을 부르던 땅이름으로 조선 태조(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천도의 새 도읍지(도읍지)로 처음 내정됐던 연고로 해서 새로운 터전의 마을이란 뜻으로 새터말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촌지역이 크고 번화한데 비해 실지 근원지인 「신촌동」이란 법정(法廷)동명은 연세대 터전으로 남아 축소판이 되어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연세대학교의 유명세에 가리워져 있다.
그뿐인가. 동 내 주거인구도 별로 없어서 동사무소도 행정구역상 대신동(신촌, 대현, 봉원, 대신 등 네 동네를 합한) 사무소에서 일괄하고 있다.
이 신촌동 내에 자리한 연세대학교는 고려대학교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명문으로 신촌동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단기 4248년(1915) 4월에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가 설립한 조선기독교대학으로 출범하여 1917년 4월에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발족, 1944년 4월에는 일제 탄압이 극도에 달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총독부 관리하에 한국인 교수와 관리인을 추방, 교명은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개명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연희전문학교로 환원하고 1946년에 연세대학교로 승격했다.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함으로써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로 개편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연세대와 통합한 세브란스 의과대학교의 연혁은 이러하다.
단기 4218년(1885) 5월에 궁정어의(宮廷御醫)인 알렌이 고종의 명의로 제중원(濟衆院∼초기에는 광혜원(廣惠院)이라는 병원(신의)을 설립한 것이 시발이 되어 1899년 4월에 에비슨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교인 「제중원 의학교」로 발전(설립), 1909년 「사립 세브란스 의학교」로 개칭, 1922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로 개편, 1942년 일제의 강압으로 아사이(旭) 의학전문학교로 됐다가, 광복후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으로 1957년 연세대와 통합함으로써 연세대학교를 협성했다.
2005년에는 1000병상을 갖춘 신촌세브란스 새병원을 완공, 서울대학 병원과 함께 대한민국의 의료계를 선도하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의료기관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으니, 이는 서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 새(터)말이 신촌동이 되고 신촌이 큰 지역으로 번져서 서울 서부도심권을 형성하여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품안에 안고 서강대와 홍익대학을 옆에 끼고 있어 대학의 번화가를 이루고 수백개의 위생업소가 자리잡아 많은 인파를 불러들인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가 활달하고 화려한 백화점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교육, 상업, 문화예술 및 교통의 요충지로서 젊은 인파의 집산(集散)이 서울 어느 곳에 못지않다.
향토문화와 대학문화가 어우러진 신촌문화는 바야흐로 통신 정보화시대를 맞아 그 미래상이 밝고 크게 기대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근래 들어서는 온라인동호인(커뮤니티)까지 신촌에 모여 자신들의 식견을 자랑하고 정보를 교환하니, 세계의 문화와 정보가 신촌을 중심으로 교류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81호 홍제천의 봄 중 조선말의 동국여비지고의 한자를 (東國輿備地攷)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