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이 개통된 지 몇 해 되지 않지만 이미 100년 전에 「서대문역(西大門驛)」이 있었다면 생소한 이야기 같다.
이 사실을 우리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이며 종교가인 나철 선생(羅喆∼弘巖大宗師:대종교를 중광)이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쳐 동분서주할 적에 단기 4238년(1905) 겨울(12월30일), 서대문역 앞에서 두암백전(頭巖伯佺)이란 분에게서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신사기(神事記)를 받았다는 고사(故事)에 의해 추적한 결과 서대문역 위치의 윤곽이 드러났다.
1900년에 경인철도(京仁鐵道)가 완공되면서 지금의 서울역은 「남대문역」이라고 이름붙인 간이역이었다. 종점에 서대문역이 있었다(서울의 본역이었다). 남대문역의 위치는 염천교 근처에 있었으며 서대문역은 서대문로타리 근처 지금의 경찰청(옛 전매청 서울 담배 제조창 자리) 언저리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화여자고등학교 경내에는 수량(水量)이 아주 풍부한 커다란 우물이 있었는데, 이것이 증기기관차(그 당시는 모두 증기기관차였음)에 물을 공급하던 수원지(水源地)였다 한다. 그 우물은 근대에 와서 지하수 관계법에 의해 폐기돼 매몰됐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의 사실은 1900년 7월에 경인철도 전구간이 개통되었고, 동년 11월 12일에는 서대문역에서 경인철도 전 구간의 개통식이 성대히 거행됐다는 것이다.
조선조 때에는 한성부 서부 반송방(盤松坊∼城外)의 노첨정계(盧僉正契)의 미동(尾洞))과 수근답계(水芹畓契)의 근동(芹洞) 지역이었다.
일제가 들어와서 1914년에 종래의 방(坊), 계(契), 동(洞) 제도를 없애고 경성부(서울) 행정구역을 186개정(町)으로 개편하면서 미동과 근동의 앞글자를 따서 미근정이라 했으며 미(尾)자도 「미(渼)」자로 바꾸었다. 광복 후에 정을 동으로 개칭하고 합·미근동(蛤·渼芹洞) 사무소 관할로 하다가 1970년 합동(蛤洞) 사무소로 바뀌고 1975년에 충정로동 관할로 넘어갔다.
원래 미근동 31번지(경찰청 북쪽) 근처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고 항상 넘쳐 흘러서 우물이 꼬리가 있는 것 같다 하여 「초리우물」 한자로 미정(尾井)이라 부른 것이 미동(尾洞) 또는 미정동(尾井洞)이라 하였으며, 또 한편 이 일대는 미나리밭이 많았기에 근동(芹洞)이라 하였다. 이렇게 두 동이름이 아우러져서 미근동이 된 것이다. 미근동의 주요기관인 경찰청(구 치안본부∼미근동 209) 자리는 전에 전매청 서울 담배 제조창이 있었던 곳인데 신탄진으로 이전했다. 일제가 지었던 이 담배제조창은 6·25당시에 미공군의 폭격목표가 돼서 서대문 일대가 수라장이 되었던 쓰라린 추억을 안고 있다.
그리고, 서대문경찰서(미근동163)가 서대문로타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타리에는 극장이 두 곳이나 있었고 일제 때부터 일상생활의 편의상가인 공설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동초등학교(미근동 21)가 운동장 담 너머로 경의선을 끼고 있다. 바로 그 곳에 미동 간이역(驛)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 철도선이 충정로 다리 밑으로 해서 능안골(북아현동)을 중간에 놓고 터널을 두 곳이나 통과하며 신촌역으로 빠져나간다.
경의선은 서울∼신의주간 499㎞로서 경부선과 함께 남북을 잇는 중요 노선이나 남북분단으로 문산까지 46㎞만 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조갯골의 한역 합동(蛤洞)
토박이 땅이름으로 조갯골을 한역(漢譯)해서 합동(蛤洞)이라 하였다 하며, 미근동과 함께 충정로동 행정관할에 속해 있다.
이 조갯골(합동∼蛤洞)은 한강에서 어물(魚物)이 서소문 밖 시장에 반입되어 집산되었으며, 주로 도성안(都城內)에 공급을 위한 시전(市廛)의 집결지였다. 곡물, 청과물도 들어왔지만 특히 건어물(乾魚物)과 조패류가 계속 거래되었으며 따라서 조개껍질이 「잔돌배기고개」 입구(현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 곳) 언덕에 버려져 산을 덮다시피하여 「조개산」이라 불렀다 한다. 옛 서소문 중앙시장(현재는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옮김)이었던 서소문 공원자리와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 지역을 「조갯골」이라 일컬었다.
또는 「배가 한강에서 만초천(蔓草川∼旭川)을 따라서 이 지역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을 만하다. 그러나 예전에는 배가 드나들던 하천도 요즘에는 토사에 밀리고 냇물이 얕아 배가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 전국에 수없이 많은 것으로 보면 있을 수 있다.
서대문 구청은 연희동으로 옮기기 전, 1977년 6월 16일까지 서소문 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프랑스대사관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서울특별시 종합건설본부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행정연혁은 충정로, 미근동과 같으며 단 1975년 관할구역 조정으로 남쪽의 반은 중림동에 흡수되고 북쪽의 미나리 밭이 있던 지역만 남아 있다.
우물을 파면서 불렀다던 초리우물 노래
미근동 지역의 옛 「초리우물」은 물맛 좋고 수질 좋고 수량이 풍족해서 그 유명도가 전국에 전파됨으로써 초리우물이 노래가 되어 우물을 팔 때 부르는 착정가(鑿井歌)로 불리어졌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 우물의 물을 뿜어, 만물을 낳게 하라.
우리는 백룡이라, 서방을 가음아라,
반송방 노천경계, 팔각정 나린 밑에,
구혈을 점지하네. 삼백년 거치어서
꼬리를 한번 치면, 감천이 솟아나니,
이러므로 세상에서 칭지왈 「초리우물」
그러나 수근은 유한하고, 먹그리도 하도할사,
아침이야, 저녁이야, 새벽이야, 밤중이야.
재상의 집, 선비의 집, 호반의 집, 한량의 집.
국수집, 팥죽집, 떡집이며, 엿집이라.
통이로세, 동의로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