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추모비 건립하자’ 주민 움직임
옥현영 차장
2006-09-11 16:52
박화목 시인, 홍제3동 생가서 지난해 81세 나이로 작고 허물어져 가는 자택에 처 김숙희 여사 쓸쓸한 여생 보내
시인 고 박화목 선생이 50년간 거주했던 생가(홍제3동). 이 곳엔 얼마전 박 선생의 명성만 듣고 도둑이 들기도 했었다.
추모비 건립을 위해 중지를 모으고 있는 주민 이정희 씨(오른쪽)와 엄예숙 본지 명예기자(왼쪽)
시인 박화목 선생 부인 김숙희 씨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귀에 익은 이 구절은 작곡가 윤용화 선생의 곡에 시인 박화목 선생이 가사를 붙인 가곡 「보리밭」의 한 구절이다. 「보리밭」을 한번쯤 불러보지 않은 이는 드물지만 박화목 시인이 홍제3동에 50년간 살아온 토박이었고, 지난해 81세의 나이로 작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주민은 흔치 않다.

박화목 선생(호 은종)은 1924년 황해도 출생으로 중국 심양시 동북신학교와, 한신대학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6.25 종군기자로도 활동했었다. 또 CBS편성국장, 한국문인협회 분과회장을 비롯, 숭의여전, 교원대 등에 출강했던 순수한 열정을 가진 문학의 선구자였다. 뿐만아니라 한국아동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할 만큼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이 커 그가 작사한 곡 중 「과수원길」은 아직도 그 아름다운 노랫말로 그 생명을 잃지 않고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박화목 선생 생전의 삶은 이렇듯 분주했지만 결국 그의 죽음 뒤 남은 것은 허물어져 가는 자택과 그가 남긴 노랫말 뿐이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주민 이정희 씨는 박화목 선생의 추모비를 건립하기 위해 주민들의 중지를 모으는 등 작지만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구립어린이집 원장으로 21년을 재직했던 이 씨는 박화목 선생의 아들과 이 씨의 둘째 아들이 한 학교에 다니면서 맺은 인연으로 이미 10년전 추모비 건립을 구에 건의 했었다. 『10년전에는 박 시인이 이 지역출생이 아닌 실향민이라는 사실과 생존한 이의 추모비를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응 때문에 포기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지금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인 상태. 이미 서대문구청장과 서대문구상공회 김경오 회장을 만나 의견을 제시했고, 긍정적인 대답을 얻은 상태라고 이 씨는 설명했다. 이에 힘입어 이정희 씨는 주민자치위원들은 물론, 지역 동장과 구의원등을 만나 「추모비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주민들의 중지를 모아갈 계획이다.

『아직 생존해 있는 박화목 시인의 처 김숙희 여사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 혼자 외로이 살고 있다』면서 『수없이 불리우는 「과수원길」과 「보리밭」에 대한 저작권 또한 20년이 지나 소멸된 상태라 받을 수 없고, 생전에 문인들이 모여살던 문화촌에 불하받은 집터와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한채 김숙희 여사는 쓸쓸한 노후를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씨는 『외국은 유명한 작가나 시인들의 생가가 관광명소가 되기도 하는데 박화목 시인같은 유명한 문인의 자택이 추모비 하나 없이 방치된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며 이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시인 박화목 선생 부인 김숙희 씨
『생전의 박화목 선생은 온화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고 박화목 시인의 부인 김숙희 여사는 박 시인을 이렇게 회고한다. 자유당 시절 이기붕 씨가 문화인들을 위해조성한 문화촌에 쌀 한가마와 3만원의 돈을 받고 특별분양할 당시 홍제3동에 둥지를 튼 박화목 선생의 가족은 한 자리에서만 50년을 살아왔다. 이미 장민호 씨 등 다수의 문인들은 5.16이후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

가옥은 수리한 지 오래 돼 겨울이면 연료비니, 전기세가 70만원에 육박하지만 이 부담은 고스란히 김숙희 여사의 몫이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박화목 시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극진히 대접을 받는다는 김 씨는 『서양은 곡 하나만 인기를 얻어도 작가의 일생을 보장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예술인이 죽으면 그만』이라며 서운함으로 말끝을 흐린다.

현재 박화목 시인의 추모비는 부천과 부산 4.19탑에 이미 생전에 건립돼 있지만 그가 50년을 살아온 문화촌 인근에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원래는 「옛생각」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던 「보리밭」을 부르며 실향민으로 아름다운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박화목 시인의 생애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