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사람들
홍제천의 봄
홍제천의 봄(7)/독립협회가 탄생시킨 독립문(獨立門)
著者 우 원 상
2006-07-07 14:38
100년 전통 계승한 자주독립 상징물
모화관 개수 독립관 개칭, 일대 공원조성
우 원 상

독립협회(獨立協會)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 단체이다. 「독립문」 하면 독립협회를 떼어놓을 수 없는 자모(子母) 관계에 있다. 그리고 독립공원도 서대문 형무소 자리를 메꾸기 위해 근래에 조성된 공원이 아니다. 100여년 전 단기 4229(1896)년에 독립협회가 독립문 건설과 독립공원 조성을 창립사업으로 발족했기 때문이다. 독립문 건설에 이어 모화관을 개수해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그 일대를 독립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적지 않은 투자와 공사를 진행했었다.

독립공원은 독립협회 자주독립의 상징물로서 독립문과 함께 독립협회 규칙 제2조에 그 건설을 당면 목표로 삼아 명시했음을 보더라도 오늘날 재건된 독립공원은 100여년의 전통을 계승한 역사적 산 교육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 당시 독립공원의 화훼재식(花卉栽植~화초재배와 식목) 계획은 과수(果樹), 관상목, 화초, 각종 관목을 심어 공원의 면모를 갖추고 한편으로는 식물재배의 실험단지 조성을 도모했다. 그 밖에도 시민의 건전한 휴식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었다.

세 부분으로 나눠서 일부는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처로 이용토록 만들고, 또 일부는 시민들이 주 1,2회의 시사문제에 관한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집회장소로 활용하고 또 다른 부분은 시민들의 운동장으로 조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립문 건설과 독립관(모화관)개수를 끝낸 뒤에 예산 부족과 시국의 격동기를 맞아 지속적인 공원조성공사가 보완되지 못했다. 필경은 일제의 침탈로 형무소가 그 자리를 타고 앉고 말았다.

독립공원 재건 바람직, 공원 영역 넓혀야
독립관 강연회, 토론장 활용, 첫 독립신문 발행처

오늘의 독립공원을 재건한 것은 참으로 바람직했으나 좀더 터전을 넓히고 시설과 조경을 확충해 형무소의 옛 자취만을 상기시킨다는 인상을 불식(拂拭)했어야 하는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공원이 주위의 아파트 단지에 압도당하는 느낌은 이제 저질러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라도 장기계획으로 공원 영역 확장에 유념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개화기 외세에 시달리던 암울한 상황에서 독립협회가 자주 독립사상을 고취해 만민에게 각성과 용기를 불러 일으켰듯이 현시의 난국을 극복하고 서울의 상징적 독립문화 공원으로 승화되기를 희구한다.

독립관(獨立館)은 중국사신 접대를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사대(事大)의 상징인 모화관(慕華館)을 독립협회가 개수해 회관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1897년 5월 23일 개수를 마치고 황태자의 한글로 된 「독립관」 친서 현판식을 거행했다. 독립협회는 이 곳을 사무소와 집회 장소로 사용하며 회원들의 강연회와 토론장으로 활용하고 독립협회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발행처로 삼기도 했다.

그 위치는 현재의 영천동 69번지에 있었으며 그 주변은 넓은 공지로 군사훈련 또는 무사들의 시험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원래의 건물은 일제로 인해 없어졌지만, 한말 열강(외세)의 거센 바람 속에서 자주독립을 추구하던 독립협회의 근거지로서 자주독립의 상징적 건물이었다. 오늘날 그 자리는 조금 이동됐어도 독립공원 한 옆에 독립관이 재건돼 지난 역사와 옛 정서를 되살리고 있다.